오래전 유럽의 한 소년이 경험한 일화입니다.

깊은 밤, 소년이 집으로 걸어가는데, 낭랑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마부는 마치 자는 듯했고, 말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고독하게 길을 갔습니다.

문득, 소년은 말의 발에서 번쩍이는 검은 빛을 봤습니다. 그것은 편자(말발굽)였습니다. 소년의 어린 마음에 사람들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살 속 깊숙이 박혀 있는 쇠붙이가 말을 얼마나 아프게 할까?’

어느 날 소년은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왜 말의 발에는 쇠가 박혀 있나요?”

할머니가 대답해 주었습니다. “말이 어느 정도 자라면 발을 보호하기 위해 편자를 박아준단다. 그러면 길가에 떨어진 쇠붙이나 못, 유리 같은 날카로운 것으로부터 상처를 입지 않아, 그래야 멀고 험한 길을 잘 갈 수 있지.”

소년은 그 말을 들은 후 비로소 편자를 다르게 볼 수 있었습니다. 편자는 말의 살을 파고들어가 고통을 주는 도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말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도구라는 역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삶에도 편자의 존재가 필요합니다. 편자를 박아 단련하는 과정은 반드시 상처를 동반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인생을 원치 않는다면 발아래 박혀있는 편자의 고통을 인내해야 합니다. 발에 박힌 편자가 차츰 익숙해지면 그와 함께 강인해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앞으로의 시대에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로 남느냐 호모 데우스로 변화하느냐 두 부류로 갈라진다고 예견합니다. A.I와 로봇, 유전공학의 급속한 발달을 충분히 예견하고 이를 잘 이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인생과 이런 과학 기술의 발전이 주는 달콤함에 젖어 서서히 자신을 잃어버리는 삶으로 나뉠 것이 분명합니다. 발에 편자를 박는 고통이 있어도, 스스로의 가치를 잃지 않아야 할 일입니다.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