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윤 학

오리가 쑤시고 다니는 호수를 보고 있었지

오리는 뭉툭한 부리로 호수를 쑤시고 있었지

호수의 몸속 건더기를 집어삼키고 있었지

나는 당신 마음을 쑤시고 있었지

나는 당신 마음 위에 떠 있었지

꼬리를 흔들며 갈퀴 손으로

당신 마음을 긁어내고 있었지

당신 마음이 너무 깊고 넓게 퍼져

나는 가보지 않은 데 더 많고

내 눈은 어두워 보지 못했지

나는 마음 밖으로 나와 볼일을 보고

꼬리를 흔들며 뒤뚱거리며

당신 마음 위에 뜨곤 했었지

나는 당신 마음 위에서 자지 못하고

수많은 갈대 사이에 있었지

갈대가 흔드는 칼을 보았지

칼이 꺾이는 걸 보았지

내 날개는

당신을 떠나는 데만 사용되었지

오리와 호수의 관계를 연애 관계로 설정한 시인은 사랑의 본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펴고 있음을 본다. 오리가 아무리 호수를 돌아다녀도 호수의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다는 것은 아무리 살갑게 사랑하는 사이라 하더라도 진정으로 상대의 가슴 속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리가 언제든 호수를 떠나 날아오르는 것처럼 인간의 사랑도 어느 순간 결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