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하는 사회이론가와 풀어보는
사회적 삶이라는 실타래 ②

지난 11일 포항시 북구 중앙상가에서 열린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 초청 ‘포항애국집회’에서 시민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경북매일 DB

요즘 보수 통합신당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다가오는 총선에 대비하여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더불어 그 주요 정치적 기반인 영남지역 전체도 술렁이고 있다. 과연 새로운 보수, 보수의 혁신은 준비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총선에서의 승리를 위한 수사일뿐인가? 정치세력으로서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부분이 있겠지만 유승민 의원 등에 의해 진행되어온 바른 정당계열의 흐름이 독자적인 가치와 지지세력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다시 전통적 보수에 해당하는 자유한국당과의 통합을 시도하는 것은 필자 개인으로서는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어쩌면 한국 정치에서는 권력의 탈환과 유지 외에 다른 실질적인 가치나 이념, 정책 상의 진전이나 쇄신을 기대하는 것은 아직도 무리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넓게 보면 오래전부터 진행되어왔고 현재에 이르러 참으로 심각한 수준에 도달한 한국사회의 정치적 양극화(polarization)의 결과이기도 하다. 다른 말로 이는 새로운 보수, 보수의 혁신이 이루어지려면 우리의 정치가, 그리고 그 이전에 우리 일상의 사회문화가 양극화의 논리와 인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오늘은 이 양극화의 두 ‘극’ 중 보수가 밟아온 궤적을 살펴 볼까 한다. 과연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보수(保守)’라 함은 거창한 도덕이나 이념까지는 아닐지라도 구체적으로 어떤 가치와 선택, 행위방식을 지칭하는 것일까?
 

돈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기회도 마다하지 않고 산도 허물고 강도 메우며 부귀영화와 권력을 위해서라면 친인척은 물론 온갖 인맥을 다 동원하는 것도 당연시했고 이 모두는 근대화와 국가,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다시 말해 우리가 1970, 80년대를 살아왔고 추구해온 삶의 지배적인 부분은 바로 이런 보수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한국 보수, 정치적 보수의 역사는 색다른 면이 많이 있다. 전통적 친일 지주세력들의 정당으로 시작된 한민당을 진보정당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한국 보수정치의 역사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버림받은 이들보다는 제1공화국 하의 자유당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한국 정치의 역사는 경쟁의 외관을 갖고 있긴 하지만 실상 일당지배의 역사, 즉 최소한 정권 교체가 거의 기대되지 않는 그런 정치지형이 오랫동안 유지되었고 이는 일본의 자민당의 장기집권 양상과 유사한 모습이다.

이런 배경에서 우리가 보수라고 부르는 일련의 정치세력의 원류는 특별히 자신을 보수라고 부를 필요조차 없었다. ‘진보’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곳에 보수라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6·25전쟁과 미국과의 강한 동맹관계 때문에 좌파의 이념과 가치가 정치공간에 들어올 가능성은 애초에 제거되었고, 그나마 자유주의, 반공주의를 일반적으로 주창하는 이들 속에서 그 중 좀 더 진보적이고 개혁적 색채를 가진 이들의 실제 수권 가능성은 대단히 미약했다. 그 이름을 나중에야 비로소 받게 되는 이 한국의 보수는 그저 지배세력, ‘사회지도층’으로 스스로를 구별하여 인식하면 족했고, 이들은 1960년대부터 경제개발과 근대화를 위한 국가와 재벌기업의 공고한 동맹과 이에 협력하는 여타 사회제도들 내의 엘리트들로 구성되어 한국 사회를 불과 2∼30년만에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

여기서 이 ‘혁명적’이라는 말이 한국 보수의 색다름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최소한 선진 유럽, 북미, 호주 등지의 나라에서 어떤 집단이나 세력을 ‘보수(conservative)’라는 말로 지칭할 때에 그것은 큰 무리 없이 이들이 전통과 안정, 도덕성, 민족 등을 중심가치로 키워드로 간직한 이들임을 추론할 수 있게 한다. 물론 보수정치세력은 어느 사회든 경제적으로 지배적인 세력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개발과 기업활동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이 잦기는 하지만, 보수라는 말이 그것이 단지 현 상태, 기득권의 옹호라는 의미 이상이려면, 즉 독자적인 정치사상과 사회적 가치라는 중심을 갖고 있음을 주장할 수 있으려면 위의 가치들을 부분적으로라도 대변할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한국사회의 전통적 지배세력, ‘영원한 여당’이었던 한국의 보수는 현대화, 개발과 성장, 실효성(혹은 실리성), 그리고 미국, 일본과의 ‘혈맹적’ 결속을 불변의 교리로 간직해 왔다. 다시 말해 북한, 중국, 소련에 대항한 어느 정도 종속적이지만 미국, 일본과의 정치, 경제적 동맹의 우산 아래서, 양적 성장을 위해 밤낮으로 줄달음치고, 정-관-재계의 부정한 결탁도 서슴치 않으며 사회안정과 질서, 무엇보다 생산증대를 위해 강제적으로 사회질서를 부과하고 노동기본권을 포함한 인권 침해를 서슴치 않는 것이 보수를 구성하는 엘리트들과 국가의 모습이었다.

여기서 보듯, 자유와 평등은 차치하고라도 본래 보수의 가치인 ‘전통’과 ‘민족’은 아무리 공식 연설과 주장에서 강조될지라도 생산과 성장, 현대화, 그리고 국가(민족과는 구별되는)에 의해 실제로는 대부분 묵살되는 항목이었다. 의아하게 들리겠지만 그것은 서양적 의미로 본다면 ‘진보’ 쪽에 더 가까운 가치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또한 현재 보수세력의 가장 목소리 크고 전투적인 부분인 태극기 집회에 꼭 미국의 성조기가 같이 휘날리는 것이나, 징용배상문제에서 촉발된 일본정부의 경제보복에 대항한 한국정부의 조치에 대해 아베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들에게서 공공연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이는 한국의 보수가, 민족문제의 가장 예민한 부분인 ‘친일파’라는 비판조차도 무릅 쓰게 하는 다른 전통적인 목표, 애착의 대상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모습들을 가치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의문스러운 점이 없지 않지만, 한국 보수의 이러한 모습은 동시에 우리가 살아온 모습이기도 하다. 근대화를 향해 줄달음치는 국가와 지배엘리트, 기업의 독촉과 강압 속에서 우리는 국가와 회사가 하라는 대로 따라가고 열심히 일하며 그 속에서 경쟁하고 자신과 가족의 출세와 영달을 도모하며 살아왔다. 또한 돈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기회도 마다하지 않고 산도 허물고 강도 메우며 부귀영화와 권력을 위해서라면 친인척은 물론 온갖 인맥을 다 동원하는 것도 당연시했고 이 모두는 근대화와 국가,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다시 말해 우리가 1970, 80년대를 살아왔고 추구해온 삶의 지배적인 부분은 바로 이런 보수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런 한국사회의 정치적, 이념적 지형에 새로운 요소가 대두한 것은 1970년대부터였다. 박정희 정부 하에서 사회적 정의와 민족적 민주적 민중적 정통성, 평등이라는 기치로 수렴되었지만 내내 만년 재야에 머물렀던 이 흐름이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정치세력화하고 87년 민주화를 거쳐 1997년에 와서 이들에 의한 독자적인 정권교체가 시작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 한국의 보수는 정교화되고 고매한 정치사상적 이념까지는 아닐지 모르지만, 사회문화적으로 지배적인 양태, 즉 우리가 살아오고 우리 사회가 작동해온 방식의 어떤 지배적인 모습을 대변하며 이것은 쉽게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정도만큼 보수가 주창하는 혁신도 그에의 필요성과 압박은 별반 중요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의 보수가 놓인 질곡은 곧바로 우리 사회가 벗어나지 못하는 질곡으로 그 핵심에는 바로 경쟁과 개발, 출세라는 한국 보수, 아니 현대 한국인의 중심적 가치가 놓여 있다. 한국적 진보의 유별남과 그 문제적인 측면을 보기 전에 먼저 이렇듯 우리의 과거의 모습을 요약하는 한국 보수의 가치가 특히 대구경북지역에 어떤 고유한 정치적 문제와 사회적 질곡을 낳았는지를 다음 마당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구자혁 경북대 강사(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