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진<br>전 경북지방경찰청장
박화진
전 경북지방경찰청장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지구촌이 신음하고 있다. 뚜렷한 백신이 없어 개인위생과 접촉차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개인위생 유지와 접촉차단에 효과적인 방법이 마스크착용이라고 한다. 급작스런 마스크 수요 폭증으로 일부에서 사재기 조짐까지 일고 있어 공동체 의식도 더욱 절실할 때다. 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는 것이 보인다. 활기찬 거리 모습이 사라진 것 같다. ‘눈 먼 자들의 도시’ 같은 영화 속 음산한 도시의 모습을 연상케 된다. 함께 걸어가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모습도 잘 보이지 않는다. 침묵의 도시로 변하는 게 아닐까하는 괜한 걱정까지 해본다. 마스크가 입을 막고 있으니 전염병재난을 넘어 소통재난까지 몰고 온 것 같다.

따져보니 그동안 세상이 너무 시끄러웠다. 참다못한 조물주가 무분별하게 말들을 내뱉는 인간의 입을 잠시 봉하려고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 같다는 엉뚱한 상상이 문득 들었다. 참이든 가짜든 말들이 범람하고 있다.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적 가치다. ‘그 입 다물라’고 제지했다가는 민주주의 공적으로 몰릴 것이다. 그러나 말에도 절제와 책임이 따르게 된다. 특히 가짜 말을 하고도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말들이 난무하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말의 성찬 세상이 되었다. 넘쳐나는 정보와 빠른 지식습득으로 사람들이 똑똑해진 탓이다. 말은 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제 맛이다. 사람 몸에 입은 하나요, 귀가 두 개인 것도 듣는 것을 많이 하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남의 말은 잘 들어주지 않은 채 자신의 말만 늘어놓게 되면 불통의 싹이 튼다. 좋은 토론회 여부는 상대의 말을 잘 듣는지 살펴보면 된다. 상대의 말은 건성으로 듣고 머릿속으로는 자신이 할 말을 생각하고 있으면 겉도는 토론이다. 시끄러운 말 싸움터로 변질될 수 있다. 회의진행 모습을 보면 그 조직의 발전가능성이 보인다고 한다. 상사나 의사결정권자의 발언시간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면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어떤 조직이든 현실적으로는 자유로운 의견개진이나 토론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회의가 윗사람의 일방적인 지시사항 전달에 불과한 상사만의 말경연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청득심(以聽得心)’을 지휘방침으로 내건 경찰지휘관이 있었다. 군이나 경찰조직과 같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하는 조직일수록 부하는 마스크를 착용한 것과 같은 상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부하직원의 말을 경청하겠다는 의지의 피력이었던 것 같다. 남의 말을 듣는 일은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잘 듣지도 않고 내 말이 나오는 그때부터 그들의 목소리는 커지고 말은 많아지며 세상은 시끄럽게 된다.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 같다. 내 생각과 의지를 들어달라는 선량후보자들의 말과 확성기 소리들이 곳곳에 나부낄 것 같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제대로 된 말을 듣고 선택해야겠다. 물론 침 튀기며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말을 하는 것은 피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우주의 기운(?)을 모아 이 말은 꼭 해야 할 것 같다.

“조물주님! 말조심하겠으니 마스크 빨리 벗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