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영화 ‘두 교황’은 실화를 기반으로 한다. 우리는 이미 영화 속 결과를 알고 있고, 결과의 진행형 속에 살고 있다. 이 영화는 그 결과를 만들어 낸 과정과 교회가 오랜 세월 속에서 구축한 내용을 담는 그릇(형식)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로 전 세계의 추기경이 바티칸으로 소환된다. ‘콘클라베’를 통해 라칭거 추기경은 베네딕토 16세로 교황에 즉위하고 종신직에 임한다. 하지만 그가 즉위한 뒤 교회는 보수화되고 가톨릭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각종 추문들이 물밀듯이 밀려들고 있었다. 변화무쌍한 시대에 엄숙하고 경직된 교리의 해석은 뒤쳐지고, 과거에 발목을 잡혀 진행되는 느린 행보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가 바티칸의 깊고 높은 곳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2013년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직을 사임한다. 그리고 다시 ‘콘클라베’를 통해 남미의 호르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선출된다. 영화의 시작을 전임 교황의 서거와 선출의 과정인 ‘콘클라베’로 시작해 교황의 사직과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로 끝을 맺는다.

‘콘클라베’는 가톨릭 교회의 수장인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 시스템이다. 라틴어에서 온 단어로 ‘열쇠로 걸어 잠글 수 있는 방’ ‘열쇠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방’을 의미한다. 일체 외부의 간섭을 방지하고 선출되는 과정과 풍경을 사전에 차단해 비밀을 유지하는 엄격하고 장엄한 행사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두 번의 ‘콘클라베’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선출된 2005년의 교황과 2013년의 교황, 두 교황의 대중을 향한 첫 발걸음을 준비하는 장면이 뒤따르고 같은듯 다른 모습이 흘러간다. 내용을 담는 형식이 달라진 것이다. 가톨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종교가 구축해 온 의식(형식)은 오랜 세월을 거쳐 진화되고 다듬어진 것으로 정통을 당대의 요구에 맞게 유지하고 변형시켜 온 결과물이다. 시대의 요구가 바뀔 때 종교는 어디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하는가. 오랜 세월동안 쌓아왔던 찬란한 형식, 그 속에 담겼을 종교의 숭고했던 정신과 시대정신이 충돌하여 또 다른 해답을 요구할 때 지도자는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하는가에 대한 과정을 영화 ‘두 교황’은 보여준다.

교회에 실망한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베르고글리오(현 프란치스코 교황) 추기경은 수차례 바티칸에 사직서를 보내지만 아무런 답신을 받지 못한다. 바티칸이 각종 문제로 당대요구를 원만히 수용하지 못하던 시점, 베네딕토 16세는 베르고글리오를 바티칸으로 호출하고 며칠을 함께 보낸다. 스스로가 적임자가 아님을 알고 퇴임을 마음먹은 베네딕토 교황과 현 바티칸의 행보에 사직서를 준비한 추기경의 며칠은 부드럽고 날카롭게 다가와 아름답고 유쾌하게 전개된다. ‘내용’과 그 내용을 담고 있는 ‘형식’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팽팽하게 당겨졌다 풀어지는 긴장과 이완의 과정이 바티칸을 배경으로 두 사람의 대화로 진행된다.

올바른 내용이 구축한 형식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랜 역사를 통해 다듬어진 형식에 대한 논쟁은 날카롭게 벼려진 단검을 들고 상대의 급소를 향하는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세상이 변화된 내용을 요구할 때, 형식의 경계를 허무는 일은 절대적 존재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앞서 무릎꿇고 고해하는 스스로의 과오는 얼마나 숭고한가.

‘신’은 이미 교황의 팔목에 채워진 만보계를 통해 ‘멈추지 말고 끊임없이 나아가라’고 계시를 내리지만 인간은 다른 곳에서 ‘신’의 응답을 찾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변화된 내용이 담겨질 새로운 형식을 찾아 만보를 지나 이만보 십만보.…. 끊임없이 행하라고 하셨으니, 스스로가 쌓은 형식을 허무러뜨리고 다시 짓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아름다운 일인가.

/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영화 ‘두 교황’은 서울과 부산 일부 극장과 넷플릭스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