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국민의 기대가 너무 컸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정말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 기대는 실망으로, 실망은 분노로 바뀌었다. 대통령에게 속았다는 배신감 때문이다.

대통령이 약속했던 진정한 국민통합은 허언(虛言)이었고, 나라는 ‘한 나라 두 국민’으로 분열되면서 서로를 부정하고 있다. 나라가 이처럼 두 동강 난 적이 없었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중심에 대통령이 있다는 사실이다. ‘통합의 상징’이어야 할 대통령이 오히려 ‘분열의 원천’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공화주의’가 무너지고 있다.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대통령의 편 가르기’이다. 내 편만 바라보는 대통령의 ‘외눈박이 사고’는 정치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베버(M. Weber)가 지적했듯이 정치인은 “국민에 대한 책임윤리와 자신의 신념윤리가 충돌할 때 당연히 책임윤리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검찰의 정면충돌 역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과 청와대가 전쟁 중이다. 대통령은 윤석열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살아 있는 권력도 엄정히 수사하라”고 당부해 놓고서는 검찰의 칼날이 청와대를 향하자 ‘윤석열 죽이기’에 혈안이 되고 있다. 조국 사건의 수사팀을 교체하여 수사를 방해하면서도 대통령은 인사권의 정당한 행사라고 강변했다. 또한 검찰이 조국 사건의 공범으로 청와대의 최강욱 비서관을 기소하자, 그는 “검찰의 기소는 쿠테타이며, 윤석열 총장은 향후 출범하는 공수처의 수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범죄피의자가 검찰총장을 겁박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이다. 대통령이 역설했던 ‘정의로운 나라’가 이제 보니 ‘내로남불 나라’였다.

청와대의 선거개입 및 하명수사 의혹을 받고 있는 정무수석·민정비서관·반부패비서관·울산시장·전 울산경찰청장 등 13명이 무더기로 기소되었다. 대통령의 친구인 송철호를 울산시장에 당선시키기 위하여 청와대가 총동원되었다는 혐의이다. 국회가 검찰의 공소장 제출을 요구하자 추미애 법무장관은 무엇이 무서운지 “내가 책임지겠다”면서 이를 거부하였다. 이게 정의부(正義部)의 책임자인 법무장관의 행태인가?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데도 두려움을 모른다. 동아일보의 특종보도로 공개된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청와대가 총괄 지휘하여 7개의 비서관실이 조직적으로 선거범죄를 저질렀다. 참으로 놀랍다. 청와대가 마치 범죄소굴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이게 나라인가?

대통령의 언행은 일치되지 않고, 비서들은 내 편 챙기기에 바쁘다. 통합을 말하면서 갈등을 부추기고, 정의를 말하면서 불의를 합리화한다. 친구를 위해서라면 선거부정도 서슴지 않는 권력, 범죄피의자가 권력의 힘을 믿고 수사검찰을 겁박하는 나라, 그것이 바로 대통령이 말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