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꿩은 다급하면 머리를 풀숲에 처박는 습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눈에 세상이 안 보이면, 세상도 자기를 못 볼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타조 역시 맹수를 만나면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17세기 아프리카에 당도한 탐험가들은 타조가 위협을 느꼈을 때 머리를 감추는 반응을 목격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류와 포유류처럼 태생부터 환경 인지력을 가진 개체의 경우 유체시절에는 자기중심적으로 환경을 인식하기 때문에 ‘내가 못 보는 건 상대도 못 본다’는 방식의 지각을 한다고 한다. 프랑스어에는 ‘불편한 진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아둔한 짓을 일러 ‘타조 행세를 한다’라는 말이 있다. 대략 ‘꿩은 머리만 풀 속에 감춘다’는 우리 속담과 의미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무더기로 기소된 청와대의 2018년 6월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관계자들 공소장의 국회 제출을 거부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 대한 정치권 논란의 파장이 심각하다. ‘잘못된 관행’이라며 하필이면 청와대 관련 공소장부터 제출을 막은 추 장관의 행태를 놓고 호사가들은 ‘다급해서 머리를 풀숲에 처박은 어리석은 꿩’에 빗댄다.

결국 추 장관의 결정은 오히려 공소장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최고조로 끌어올렸고, 언론에 의해 전문(全文)이 공개됐다. 비장한 문투로 작성 제출된 72쪽 분량의 공소장을 읽어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혀를 찬다. 박근혜 정부를 ‘국정농단’의 죄목으로 잔인하게 단죄해온 이 정부가 저지른 일이라곤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범죄혐의 내용이 험악하다.

사람들 복장을 더욱 터지게 하는 대목은 도무지 앞뒤가 안 맞는 추 장관의 거듭된 변명이다. 실정법을 장관의 훈령으로 뒤집은 것부터가 명백한 하자인데, 하다 하다 안 되니까 공소장 공개 자체가 ‘위헌’이란다. 이 나라가 언제부터 헌법재판소장도 아닌 법무장관이 ‘위헌’여부를 결정하는 나라가 됐나. 사건을 담당해온 수사팀들을 공중 분해하다시피 해놓은 횡포도 그렇거니와, 추 장관이 욱대기는 ‘사법 정의’는 도무지 합법적이지도 양심적이지도 않다.

여당에서마저 ‘긁어 부스럼’이라는 비판이 대두되면서, 추 장관의 정치 행보가 주목거리다. 과거 추미애 의원이 국회에서 공소장을 흔들며 핏대를 세우던 여러 편의 동영상을 보면 볼수록 자꾸만 모래밭에 머리를 처박은 타조의 모습이 연상된다.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들을 사법처리할 적에는 입도 벙긋 안 하던 ‘피의자 인권’을 자기들 범죄 수사에만 적용하는 극단적인 후안무치는 멀쩡한 정신으로 견뎌주기가 참으로 벅차다.

하긴,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는 타조의 행동을 놓고 ‘진동을 느껴 도망칠 방향을 찾는 지혜’라는 다른 주장도 있으니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고작 이런 수준의 어설픈 권력 농단으로 점수를 따서 국무총리도 되고, 대통령도 되는 나라였던가 싶다. 필경 타조가 은밀히 받아들었을 밀지(密旨)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궁금하고 또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