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 서울의 겨울이 추워졌다. 요즘 겨울은 겨울도 아니라더니 어디 한 번 겨울맛을 보라 한다.

겨울을 좋아하던 나인데 디스크를 앓으면서 몇 년씩 겨울이 무섭다가 최근 들어 겨우 겨울이 좋아졌다. 몸이야 아프든 말든 손가락 관절이 쑤시든 말든 겨울은 역시 상쾌한 계절이다.

그래도 연로하신 부모님은 걱정이 아니될 수 없다.

서울, 대전 사이를 돌아온 탕자처럼 왔다갔다 하다보니 끼니를 제 때 찾아 먹기 어려운 때가 많다.

가만 있자, 뭐 먹을 만한 게 없나? 대전역사 안에 성심당 분점이 있지만 맛있다는 튀김소보로도 하루 이틀이지 오늘은 다른 게 먹고 싶어진다.

광장을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막 꺾어 들면 옥수수며 가래떡이며 군밤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계신다. 그중 어느 한 분에게 흰 가래떡을 가리키며 얼마냐고 여쭙는다. 헉. 천원이라 한다. 가래떡 하나에 천 원이 아니라 두 개가 천 원이라는 것이다.

옥수수는 두 개 한 묶음에 이천 원 이라 하신다. 서울에서는 삼천 원였다.

서울이냐 대전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세상에는 돈을 세는 단위가 다른 사회들이 있다.

아파트를 사고파는 곳에서는 10억, 20억이 예사인 경우도 많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회의라는 곳엘 가면 십 만원도, 이십 만원도 쉽게 받는다. 택시 운전사들은 미터기에 몇백 원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이 작지 않은 문제다. 역 앞의 행상들은 다들 한 묶음에 천 원, 이천 원, 삼천 원을 매긴다.

대전 중앙로역 성심당 본점 앞에 가면 행상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닭꼬치도 팔고 오뎅도 판다. 빨간 오뎅이든 그냥 오뎅이든 한 개에 칠백 원인데, 세 개를 사면 이천 원이다. 백 원을 깎아 주는 셈이다.

서울 지하철 6호선 불광역 앞에 가면 날이면 날마다 오뎅과 떡볶이를 파는 집이 있는데 1인분에 삼천 오백 원이다. 언젠가 오백 원짜리 동전이 없어 제발 삼천 원어치만 주십사 했다. 그랬더니 절대 안 된다고 고개를 흔들다가 나중에 지나가는 길에 오백 원을 더 내라고 했다.

세상에는 확실히 ‘등급’이 다른 사회들이 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더 높은’ 사회에 소속되고 싶어한다. 그런데 간과하기 쉬운 것이 하나 있다. 백 원짜리 천 원짜리를 세는 사회에 무슨 거짓이 있겠으며 설혹 있다한들 그 크기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성스럽다고 하는 것이다. 성스럽다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럴 것이다.

좋은 옷, 고상한 취미를 가지면 성스럽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성스러운 흉내를 내는 것이다. 그 외투 안에 숨어있는 거짓을 우리는 모두 볼 수 있어야 한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