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기자가 만난 경북 사람
자신의 방식으로 ‘사회 참여’ 실천하는 한동대 박원곤 교수

연구와 강의, 방송 출연과 기고 등 ‘일인 다역’을 정열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한동대 박원곤 교수.

모두가 인정하는 세칭 일류대학에서 사회학과 외교학을 공부했다. 미국 유학에선 국제정치학을 전공했다. 2차례에 걸쳐 서울대가 주는 우수논문상과 학술상을 받았다. 한국국방연구원 실장을 지냈고, 통일부와 외교부의 정책자문위원 역할도 한다. 이 정도 스펙과 경력이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 오만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마주 앉은 상대에 대한 배려와 깍듯한 예의가 몸에 밴 사람. 기자가 한동대학교 박원곤(52) 교수를 접한 첫 느낌이었다.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같은 교수’로 역할하며, 방송 출연과 기고를 통해선 그간 연구해온 외교-국방-안보 관련 지식을 시청자와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고 있는 박 교수.

겸양지덕(謙讓之德)을 갖춘 학자인 그에게 스승으로서의 삶과 방송 출연 중 에피소드 등을 물었다. 더불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적 태도, 향후 국제 질서의 재편 방향도 질문했다. 아래 그 내용을 요약한다.

 

美 유학시절 김영길 총장 특강에 감명
7년 전 한동대와 귀한 인연 맺어
학생과 교수의 공동체로 동고동락
아버지 같은 교수 되고자 부단한 노력
대담·토크 등 방송활동도 활발히 펼쳐

-포털사이트 등에서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국제지역학 교수로 소개되고 있다. ‘국제지역학’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걸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문인가.

△국제학, 국제정치학, 정치학을 아우르는 영역이다. 우리 학교의 경우 거기에 영어도 포함돼 있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 대부분은 정치학과 국제정치학 전공자다. 다른 대학의 정치외교학과와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2008년 이후 임용된 교수들은 모두 영어 강의가 가능하다. 한동대 강의 중 영어로 진행되는 게 40% 이상이다. 학생들도 전공과목 중 4개는 반드시 영어로 듣도록 돼 있다.

-한동대로 오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지역적 연고가 있는지.

△아니다. 난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한동대를 처음 알게 된 건 미국 유학시절인 1994년이다. 시카고에서 열린 ‘전미 유학생 수련회’에서 김영길(한동대 1대 총장·1939~2019) 선생을 만났다. 그의 열정적이고 진실한 특강에 감명 받았다. 그때부터 우리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다.

-7년쯤 포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생활했다. 많은 학생과 포항시민들을 만났을 텐데.

△본적은 경남 김해고, 아버지는 부산 사람이다. 영남은 내게 익숙한 곳이다. 포항의 경우엔 임용 후 처음 왔지만 불편함을 느끼진 않았다. 오래 생활했던 서울보다 좋은 점이 더 많다. 복잡한 대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공기도 좋고 바다도 가깝고, 삶의 질이 더 높아진 느낌이다. 게다가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가 친절하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이곳에서 생활하다가 서울에 가면 갑갑하다.(웃음)

-재직 중인 한동대는 어떤 대학인가.

△‘학생 중심의 학교’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로 오기 전 국방연구원에서 18년간 일했기에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볼 수 있었다. 한동대는 입학생들이 전공을 정하지 않고 들어온다. 그들이 1년 동안 자신의 원하는 강의를 듣고,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한다. 자율과 자기 결정권이 존중되는 것이다. 비슷하게 흉내를 내는 다른 대학이 있지만, 우리 학교의 경우엔 성적순으로 인기 있는 과에 몰리는 현상이 적다. 만약 그렇더라도 교수를 충원하는 등의 방식으로 유연하게 대처한다. 한 해 신입생이 700명 정도인 소수정예 시스템이라 가능했다. 지난 20년간의 실적이 이 시스템이 성공적이었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학생들과의 관계는 어떤지.

△우리는 ‘학생과 교수의 공동체’를 지향한다. 모든 교수가 학기가 시작될 때면 학생 30여 명과 하나의 팀을 이룬다. 일종의 ‘담임 제도’ 같은 것이다. 팀원이 된 학생들과 1년간 동고동락한다. 크고 작은 활동을 함께 하며 고민을 공유한다. 그런 까닭에 편안한 친구처럼 느껴지는 교수가 될 수밖에 없다. 학생의 고민과 어려움을 들어주는 아버지 같은 교수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공동체 생활 훈련’이 4년 내내 지속되기에 한동대 졸업생이 사회에 나가면 ‘상대방을 존중하고, 팀워크가 좋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사실 사회생활에서 능력보다 더 중요한 건 조직원들과 불화 없이 어울리는 화합의 마음이 아닐까.

-한동대에서 언론 노출이 가장 많은 교수 중 한 명이다. 방송 출연과 신문 칼럼 기고에 적극적인 이유가 있는지.

△방송 출연을 처음 시작하게 된 건 한국국방연구원에서 일할 때다. 한미동맹과 북한문제 등 통일-외교-안보가 나의 연구 분야다. 이것들은 비단 한국만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한동대에 오기 전부터 정책보고서를 써왔고, 김영삼 정권 시기부터 정부와도 밀접하게 소통했다. 그러다 보니 언론 매체와 자연스레 연결이 됐다. 기자들이 당면 문제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들에게 내가 아는 정보와 지식을 제공했다. 방송 출연과 신문 기고는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내가 의도하거나 먼저 나서서 TV에 나가려고 한 것은 아니다.(웃음)

-공중파, 케이블방송, 종합편성채널 등 다양한 방송에서 얼굴을 볼 수 있다.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면.

△사람마다 타고난 성향이 다른데 내 경우엔 생방송이 잘 맞는다. 카메라 앞이라고 긴장하거나 하진 않는다. 오히려 녹화방송이 더 어렵다. 한 호흡으로 쭉 이어지는 생방송이 좋다.

에피소드라면…. 2018년과 2019년엔 ‘북미-남북 문제’와 관련해 자주 방송에 출연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도 YTN 생방송에 출연 중이었다. 그런데 방송 중에 회담이 결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전에 준비된 시나리오도 없이 즉각적 판단에 따라 회담이 깨진 이유와 향후 전망을 예측해야 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25년 이상 공부해온 주제이니 당혹스럽진 않았다.

-세간엔 언론 노출이 잦은 교수를 비판하는 시각도 있는데.

△학기 중엔 주말에만 서울에 간다. 주중에는 내내 포항에 있다. 내 본업은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지 방송 출연이 아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세운 원칙이 있다. 전공 분야를 다루는 대담 프로그램과 토론 프로그램에만 출연한다는 것이다. 여당과 야당이 대립하는 국내 정치에 관해선 논평하지 않는다. 이는 방송계에도 잘 알려져 있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정치를 할 생각이 전혀 없다. 하나를 덧붙이자면 방송과 신문 기고를 포함한 나의 활동은 내가 가르치는 학문의 영역과도 많은 부분 겹친다. 그렇기에 방송된 토론 프로그램을 강의 중에 활용해 학생들과 의견을 주고받는 경우도 흔하다.

-올해 한미 관계, 남북 관계 등은 어떻게 전망하는지.

△한마디로 예측하기가 몹시 어렵다. 세계 질서 자체가 우리에게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향후 30년 이상 넘어서야 할 힘겨운 문제가 연이어 발생할 것이다. 한-미, 한-중, 남-북, 미-북, 한-일 관계 등에서 세계의 변화와 흐름을 정확하게 읽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보기에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진보와 보수가 극단적으로 갈라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는 태도다. ‘국제 정치’라는 영역엔 정답이 없다. 항상 여러 가지 견해와 주장이 충돌한다. 이를 조율하기 위해선 끊임없는 토론이 필요한데, 아직 한국엔 그런 분위기가 완전히 정착되지 못했다. 진보-보수간 갈등 해결을 위해선 자기 의견을 내세우기에 앞서 상대방의 견해에 귀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스승으로서 제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건 뭔가.

△우리 학교의 모토가 ‘공부해서 남 주자’다. 이는 자기 이익만 취하지 않고 남을 섬기는 게 목표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상대방 의견을 경청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는 자기 이익과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하는 게 아니다.

-당신은 ‘지식인의 사회 참여’가 어떤 형태로 드러나야 한다고 보는지.

△어려운 질문이다.(웃음) 전공 영역인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 한국이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우리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앞으로도 고민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인터넷 댓글 등을 통한 비난이 있더라도, 내가 옳다고 믿는 생각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경험과 학문적 연구를 토대로 나와 더불어 타인을 위한 발전 방안을 찾아가는 게 소박하지만 바람직한 ‘지식인의 사회 참여’ 방식이 아닐까.

-올 한 해 계획과 향후 학자로서의 궁극적 목표는.

△작년부터 시작한 미-중 관계 연구를 지속할 예정이다. 미국 대선과 한국 총선이 있는 올해는 어느 시기보다 역동적일 게 분명하다. 이미 관련 논문 2편을 발표했다. 중장기적인 계획은 1953년 한국전쟁 이후부터 1990년 냉전이 해체될 때까지의 과정을 깊이 있게 연구해보고 싶다. 냉전사(冷戰史·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 역사)는 나의 세부 전공이기도 하니까.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 한국이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우리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앞으로도 고민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비난이 있더라도, 내가 옳다고 믿는 생각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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