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을사늑약, 고종황제의 강제퇴위, 정미7조약 체결 등 일제의 만행에 항거하고자 의병연합체인 13도창의군을 조직해 군사장에 추대됐으며, 1908년 의병총대장을 맡았다.
그는 왜적의 심장부인 통감부를 치고자 선발대 300명을 이끌고 동대문 밖 30리 지점까지 진격했으나, 후속부대의 지연 등으로 결국에는 실패했다.
재탈환을 기약하고 경기도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하며 기회를 찾던 중 헌병대에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고 교수형으로 1908년 9월 27일 순국했다.
허위 선생의 숭고한 나라 사랑 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순국 101주년이 되는 지난 2009년 9월 28일 왕산허위선생기념관이 개관했으며, 국가보훈처는 지난 2010년 6월 해당 시설을 현충시설로 지정했다.
/심상선기자 antiphs@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