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태산명동(泰山鳴動)에 서일필(鼠一匹).

큰 사건이 터진 후 뒤처리가 어정쩡하고 미흡하게 보일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회자되는 이 말은 쥐띠해인 2020년 올해에는 더더욱 탐탁스럽지 않게 들린다. 그런데, 쥐와 비교할 수조차 없이 작은 바이러스가 새해 벽두부터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바이러스는 온전한 생명체가 아니다. 미생물인 박테리아의 측정 단위가 마이크로미터(1백만분의 1m)인데 비해 바이러스는 그 단위가 나노미터(10억분의 1m)이다.

바이러스(病毒)에 태산명동(泰山鳴動)! 고성능 현미경으로 겨우 볼 수 있는 바이러스로 인해 지금 태산이 울고 있다. 중국 온 나라가 질병의 재난 속에 휩싸여 있다. 중국 우한(武漢)이라는 도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병의 확산은 세계를 불안과 공포로 떨게 하고 있다. ‘갈수록 태산’이고 ‘걱정이 태산’ 같다.

우한의 834킬로미터 북동쪽에 태산이 있다. 중국에서는 옆 동네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다. 태산은 우리 산들과 비교해도 그리 높은 산이 아니다. 최고봉의 높이가 1천535미터로 지리산의 한 봉우리인 토끼봉과 얼추 비슷하다.(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 높이는 1천915미터이다.) 그런데도 태산은 중국 오악 중 하나로, 중국 최고의 산으로 대접받아 왔다. 공자도 ‘동산에 오르니 노나라가 작게 보이고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게 보인다.’(孔子登東山而小魯, 登太山而小天下)고 하였다.

이러한 태산의 위용을 앞세우고 ‘메이드 인 차이나’를 지구촌 구석구석에 전파하며, 자본주의로 무장한 미국과 더불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며 세계화에 앞장서던 ‘큰나라’ 중국이 작디작은 바이러스로 잔뜩 움츠러들어 있는 것이다.

1973년 독일의 경제학자 E. F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성장지상주의를 경계하였다. 경제 성장이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온다고 하여도 환경 파괴와 인간성의 파괴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면 성장지상주의는 맹목적인 수용의 대상이 아닌 성찰과 반성의 대상이라고 지적하였다. 성장보다는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을 통한 환경과 인간성의 회복을 주창하였다.

그러나, ‘작은 것이 아름답다’ (Small is Beautiful)라는 말은 세계화의 거대한 파도에 밀려 그저 아름다운 한 문장으로 박제화 되다시피 하였다. 인터넷과 항공망에 의해 세계는 촘촘히 연결되어 있고, 물적 인적 교류는 슈마허의 지적을 비웃듯이 나날이 거대화되고 있다. 세계화, 거대화는 이미 부인의 단계를 넘어섰지만, 부작용 또한 어마어마하다. 연결된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바이러스 질병이라는 부정적인 면을 우리는 눈앞에서 보고 있다. 중국의 한 도시에서 시작된 병은 더 이상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성장과 세계화의 탄탄대로를 질주하는 듯이 보이던 인간의 모습은 얼마나 초라한가.

작은 것이 두렵다(Small is Fearful)! 중국이, 한국이, 전 세계가 떨고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명제가 참이 되도록 만들 수는 없을까?

마스크를 쓰며 옷깃을 여미고 겸허해질 시간,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