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베벨광장

베를린 베벨광장. /사진 Mikel Iturbo Urretxa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는 고풍스러운 건물들로 둘러싸인 베벨광장(Bebelplatz)이 있다. 이 광장이 조성된 것은 아직 독일이라는 나라가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던 18세기로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2세의 명에 따라 궁정건축가 게오르그 벤첼스라우스 폰 크노벨스도르프가 만들었다. 광장주변에 있는 왕립오페라극장, 성 헤드비히 대성당, 현재 훔볼트 대학 본관으로 이용되는 하인리히 왕자궁과 옛 왕립도서관도 이때 함께 지어졌다.

그렇다면 광장의 이름 베벨은 어디서 온 것일까? 베벨은 독일 사회주의 정치인의 이름이다. 원래 이 광장은 오페라하우스 광장(Platz am Opernhaus)으로 불렸는데 1947년부터 베벨의 이름을 따 베벨광장이라 불리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베벨광장 정중앙 바닥에는 가로 세로가 120cm나 되는 꽤나 큰 규모의 유리창이 나있다. 유리창 아래로 비어 있는 공간이 나타나고 벽면에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하얀색의 책장들이 설치돼 있다. 도대체 이게 뭘까?

발아래 텅 빈 공간과 비어 있는 책장들은 1933년 5월 10일 늦은 밤 이 곳에서 일어났던 한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념조형물이다. 나치는 정권을 장악한 이후 ‘비독일적인’ 예술과 사상에 대한 대대적인 말살정책을 폈다. 그날 밤 나치즘에 경도된 수천 명의 대학생들은 2만 권이 넘는 책들을 불태웠고, 수만 명의 시민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유대인 학자와 저자들의 책들과 나치를 비판한 지식인들의 저서들도 타오르는 불길에 던져졌다. 문화와 예술 그리고 사상과 학문의 중심지였던 베를린의 정신도 책들과 함께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나치의 잔인한 정신 학살이 자행되자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 야만적 행위를 조롱하는 ‘분서(die Bucherverbrennung)’(1938)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했다. 어떤 시인이 태워질 도서 목록에 자신의 책이 빠진 것을 보고 분노하며 포함시키라 항변하는 역설적인 내용이다. 브레히트의 시는 실화에 근거를 둔 것으로 오스카 마리아 그라프(1894∼1967)라고 하는 작가가 실제로 분서사건이 있은 후 자기의 책들이 금서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분노하여 ‘나를 불태우라’(Verbrennt mich)는 탄원의 글을 신문에 기고한 일이 있다.

책들이 화염에 싸여 잿더미로 변한, 다시 말해 인류의 정신이 광적인 이념에 유린당한 현장에 기념조형물을 설치한 사람은 유대인 미술가 미햐 울만(Micha Ullman)이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출신의 울만은 오가는 사람들이 발아래 유리창을 통해 잿더미로 변해 땅 속에 묻혀 사라져 버린 정신을 텅 빈 공간, 텅 빈 책장으로 표현했다. 작품의 제목은 ‘도서관’이다. 어둠이 깔리면 땅 속 비어 있는 ‘도서관’으로부터 하얀 불빛이 마치 나치의 그날 밤을 피어올랐던 불길처럼 흘러나온다. 책은 불에 탔고 지식인들은 추방을 당했다. 남은 것은 정적과 침묵뿐이다.

울만의 ‘도서관’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념조형물과는 사뭇 다르게 보인다. 보통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형물들은 웅장한 모습을 뽐내며 넓은 공간을 차지한다. 하지만 울만의 ‘도서관’은 그렇지 않다. 드러나기 보다는 조용히 도시 속에 침전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 상징성과 호소력은 더욱 강하다. 울만의 작품 가까이 바닥에는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쓴 비극 ‘알만조르(Almansor)’의 대사 한 구절이 새겨져 있다. “책을 태우는 자, 사람도 불태울 것이다. (Wer Bucher verbrennt, verbrennt auch Menschen)”

/김석모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