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도서 성공한 귀농인이 된 엄지영지버섯 오순기 대표

오순기 대표가 자신을 ‘성공한 귀농인’으로 키워준 영지버섯과 영지 캐릭터를 들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젊은 법학도가 있었다. 하지만 사람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낯선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던 그는 법조인이 아닌 사업가가 됐다. 30~40대엔 탄탄한 중소기업을 이끌며 거칠 것 없는 삶을 살았다. 부르면 언제든 달려올 친구도 많았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인간들에겐 부침(浮沈)이 있는 법. 쉰 살 무렵. 그는 사람과 돈을 한꺼번에 잃었다. 하강하는 롤러코스터처럼 사업이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때 떠올린 것이 ‘고향’과 ‘귀농’이란 단어.

칠곡군 기산면에서 엄지영지버섯을 운영하는 오순기(56) 대표는 누구보다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다. 법관을 꿈꾸던 20대 청년에서, 잘 나가던 건축·설비업자,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영지버섯과 함께 새로운 꿈을 키워가고 있는 사람.

지난 주말. 귀농을 통해 또 다른 성공을 이뤄낸 오순기 대표를 만나 그가 헤쳐 온 풍파와 세파에 관해 들었다. 아래 흥미로웠던 그 이야기들을 정리한다.

 

사법고시 준비하다 건축·설비업에 도전

승승장구 중 무리한 확장으로 실패 ‘쓴맛’

50대 앞두고 고향 칠곡서 ‘인생 2막’ 시작

전망 밝은 시설재배 작물 영지버섯 선택

가공상품도 만들어 베트남 등 해외진출

“새롭게 시작할 사업 아이템 ‘무궁무진’

융·복합시스템 갖춘 농촌서 기회 잡아야”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1964년 칠곡에서 태어났다. 현재 영지버섯 재배와 관련 제품 생산을 7년째 하고 있다. 영지버섯은 잘 키우는 것 이상으로 판로 개척과 유통망 확보 등이 중요하다. 영지버섯의 효능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최근의 트렌드를 잘 반영해내지 못해 다른 건강식품에 비해 조금 밀리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있다.

-청년시절엔 사법시험을 준비했다고 들었다. 지금 모습과는 전혀 다른 꿈을 꾼 것인데.

△내 또래들이 진학할 땐 남학생들이라면 대부분 법대나 상경대, 정치외교학과 등을 지망했다. 시골은 특히 그랬다. 법대에 가면 다양한 진로가 있으리라 보고 선택하게 됐다. 경북대 법대에서 공부했다. 다른 친구들처럼 나도 3학년 때쯤 사법시험 준비를 했다. 한 3~4년 공부를 해보면서 깨달았다. 사법시험은 나와는 맞지 않았다. 난 하루에 14~15시간씩 집중해 공부만 할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가 못 된다.(웃음)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 빨리 접었다.

-그럼 이후엔 어떤 일을 한 것인가.

△군대를 다녀온 후 졸업을 하고 친척 형님과 건축·설비업을 시작했다. 저온 창고와 관련 시설을 만들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가 ‘콜드 체인 시스템’이 한국에 정착된 시기다. 요즘엔 백화점이나 마트의 식품을 대부분 냉장 보관한다. 당시는 그런 체계가 아직 없었다. 농협이 운영하는 연쇄점이 현대화되면서 우리 사업과 연결이 됐다. 귀농해 영지버섯 재배를 시작할 때까지 그 일을 계속했으니 제법 오래 했다.

-사업은 잘 됐는지.

△경제적으로 나쁘지 않았고 재미도 있었다. 그런데 다른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려고 무리하게 투자를 하다가 돈도 잃고 사람도 잃었다.

-귀농을 결심한 이유나 계기는 뭔가.

△진행하던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2013년쯤 귀농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이미 나이가 오십에 가까운 시점이라, 다시 뭔가를 시작할 것 같으면 먼 미래를 봐야한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에 만난 ‘효자’가 영지버섯이다.

-귀농지로 칠곡을 선택한 이유와 초창기 어려웠던 점은.

△칠곡이 고향이다. 아는 사람도 많고, 대도시와 가까워 입지도 괜찮았다. 문제는 귀농하던 때 금전적으로 너무 어려웠다는 것이다. 사업 자금이 별로 없었다. 또 키울 작물의 선택이나 재배 노하우 등을 조언·교육받는 게 쉽지 않았다. 요즘 같은 체계적인 귀농·귀촌 프로그램이 없던 시기였으니까.

나이 든 사람보다는 청년들에게 귀농을 권하고 싶다.

젊은 사람이 농촌과 조화롭게 매치된다면 국가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농촌 창업 프로그램과 소상공인 창업 프로그램 등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얼마든지 도시보다 풍요로운 삶을 농촌에서 설계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처음부터 영지버섯을 키우겠다는 결심을 하고 귀농한 것인지.

△버섯을 재배하겠다는 마음은 있었다. 내가 사업을 했던 분야와 연관시켜 봐도 단순 원예나 전통 작물보다는 시설 재배의 경제적 전망과 미래가 밝을 듯했다. 그때부터 어떤 버섯을 키울 것인가를 고민하며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표고버섯, 상황버섯, 영지버섯 등을 놓고 적합성과 합리성을 검토했다. 표고버섯은 제시간에 수확하지 않으면 상품가치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이 약점으로 느껴졌다. 또 다른 약용 버섯은 시설 관리에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투자해야 했다. 영지버섯을 선택한 건 수확 시기가 비교적 자유롭고, 관리 비용이 적절하며, 수익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영지는 실온 재배에 통상 3년 기준 4회 가량 수확이 가능하다. 결정한 이후엔 영지버섯 재배에 최적화된 환경을 조성하고자 노력했다.

-영지버섯 재배만이 아니라 가공과 유통에도 뛰어들었는데.

△영지버섯 농가는 전국에 70여 개쯤 된다. 전체 생산량은 20t 정도다. 비싼 버섯이다. 건조한 버섯의 경우 1kg에 5만~6만 원이다. 그럼에도 면역력 향상과 혈행 개선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판매는 잘 되는 편이다. 영지의 약효는 ‘동의보감’ 등의 의서에도 잘 나타나 있으니까. 특히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 영지버섯을 매우 신뢰한다.

영지버섯은 99%가 재배되는 것이다. 시장에서 유통되는 자연산은 거의 없다. 중국산 영지는 생산량도 많고 가격도 싸지만,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 시장에선 깨끗한 지하수를 이용해 키우기에 오염 가능성이 없는 한국 영지버섯을 최고로 쳐준다.

 

영지버섯을 정성으로 돌보고 있는 오순기 대표.
영지버섯을 정성으로 돌보고 있는 오순기 대표.

-해외 진출까지는 어떤 과정을 거친 것인가.

△칠곡군에 중장년층을 위한 창업지원 프로그램이 있다. 그걸 통해 베트남 호치민에 가게 됐고, 거기서 한국식품 도매상을 크게 운영하는 분을 만나 베트남 진출을 도모할 수 있었다. 칠곡군의 도움이 적지 않았고, 개인적인 노력도 기울였다.

홍삼을 수출하는 방식으로 영지버섯도 베트남에서 유통한다면 성공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현지 반응은 아주 좋은 편이다.

-서울 등 대도시에서 영지 가공제품이 잘 팔린다고 들었다.

△영지버섯과 현미를 가공해 만든 ‘누룽다욧’이 인기다. 영지버섯이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을 떨어뜨려 다이어트에 효과를 보인다는 농촌진흥청 연구 결과를 접한 후 아이디어를 냈다. 영지와 곡물을 이용해 먹기 편하게 만든 제품이다. 출시한지 3년 됐는데 지금까지 4만~5만 상자 정도 판매했다.

-요즘 법조인 친구들을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이젠 그 친구들이 날 부러워한다.(웃음) 우리 세대쯤이면 다들 퇴직을 앞둔 나이 아닌가. 그런데 난 앞으로도 할 일이 많고, 새롭게 시작할 사업 아이템도 무궁무진하다. 내가 귀농을 후회하지 않는 이유다.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할 게 있다면.

△나이 든 사람보다는 청년들에게 귀농을 권하고 싶다. 젊은 사람이 농촌과 조화롭게 매치된다면 국가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정부 지원 프로그램도 많은 부분 청년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농촌 창업 프로그램과 소상공인 창업 프로그램 등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얼마든지 도시보다 풍요로운 삶을 농촌에서 설계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현재 개발 중인 영지버섯 가공품이 있는지.

△영지버섯과 꿀의 혼합물을 동결 건조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꿀 자체만으로는 수출하기가 쉽지 않다. 관련 규제도 많다. 하지만 영지와 결합시켜 분말 형태로 만든다면 포장도 쉽고, 무게도 가볍게 할 수 있다. 수출 역시 용이해진다. 더불어 영지버섯만이 아닌 다른 약용 식품과도 결합이 가능하다. 분말식품은 처음 접하는 것이라도 소비자에게 저항감이 별로 없다. ‘영지·꿀가루’는 상품화 과정을 거쳐 곧 시장에 선보일 계획이다.

더불어 영지버섯과 토종닭을 함께 이용한 삼계탕도 내놓을 예정이다. 인삼이나 녹두, 능이버섯이 아닌 영지가 들어간 삼계탕은 아직 보편화가 덜 됐다. 이에 착안한 것이다. 국내 판매와 ‘농가 맛집’으로의 납품, 나아가 베트남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으로의 수출도 추진하고 싶다. 영지버섯 가격은 한국보다 베트남이 2배 이상 비싸다. 그만큼 한국산 영지를 높이 평가한다. 그곳 상류층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세우고 있는 장기적 계획은 무엇인가.

△지금은 ‘6차 산업(1·2·3차 산업을 복합해 부가가치를 극대화한 산업) 시대’다. 이제 농촌도 용·복합산업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단순히 농사짓는 것만으론 ‘농가소득 5천만 원 시대’에 안착하기 어렵다. 가공도 하고, 유통도 하고, 수출도 해야 한다. 그래야 시너지 효과가 생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도 단순한 금전 보조가 아닌 6차 산업의 토대를 만들어주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엔 그렇게 바뀌고 있는 것 같은데, 거기에 가속도가 붙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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