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설날‘新 풍속도’

지난해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설맞이 민속놀이 한마당’에서 시민과 관광객들이 풍물패의 신명나는 사물놀이 공연을 즐기고 있다.
지난해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설맞이 민속놀이 한마당’에서 시민과 관광객들이 풍물패의 신명나는 사물놀이 공연을 즐기고 있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지난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한다. 해가 바뀌는 그 시점을 기려 우리 민족은 예부터 ‘설날’을 가장 큰 명절 중 하나로 여겨왔다. 설날이 되면 각지에 흩어져 있던 가족과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설빔을 입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다. 떡국 역시 빠질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은 잘 찾아볼 수 없지만, 연날리기·윷놀이·널뛰기 등의 놀이문화도 설날의 보편적인 모습이었다.

‘가족끼리 새로운 해를 맞이하고 덕담을 나눈다’란 본질 자체는 설이 생긴 처음부터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겠지만,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처럼 설날을 맞이하는 풍경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달라져 왔다. 설날이라는 명칭만 하더라도 지금은 익숙하지만 일제 강점기 시절 문화 말살정책에 의해 사라졌다가 1989년 노태우 정부에 접어들어서야 제 이름을 찾았다. 기술의 발전만큼 세대 간의 인식 변화가 그 어느때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요즘, 달라진 설 문화에 대해 짚어본다.
 

“음식은 주문합니다” 노동서 해방된 명절

인터넷·전화 차례상 주문 서비스 인기
주부들 괴롭히는 ‘명절증후군’은 그만

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떡국이다. 예전에는 떡국에 쓰일 가래떡을 집에서 직접 만들어 뽑아냈었다고도 하지만, 지금은 상품으로 사서 끓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은 가래떡뿐 아니라 떡국 자체를 직접 끓이지 않고 조리된 것을 사 먹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는 비단 설만이 해당하는 것은 아니며 차례상 역시 점점 간소화되거나 없어지는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이나 전화를 통해 차례상을 주문하는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유통업체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간편식 제수용품’의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고된 명절 노동을 대신해 ‘모두가 즐거운’ 명절을 보내자는 마음가짐이 점차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것으로, 해당 분위기를 받아들이는 기성세대도 늘고 있다.

주부 손모(41)씨는 “몇 년 전 시부모님께서 먼저 차례상을 없애고 명절을 간소하게 보내자고 제안하신 뒤로 큰 스트레스 없이 명절을 맞이하고 있다”면서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니 명절이 참 다르게 느껴진다”고 전했다.

 

지난 설 연휴 경주 교촌 한옥마을의 경주개 동경이  체험장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기질이 온순한 경주개 동경이는 사람과의 친화력이  좋아서 특히, 아이들이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설 연휴 경주 교촌 한옥마을의 경주개 동경이 체험장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기질이 온순한 경주개 동경이는 사람과의 친화력이 좋아서 특히, 아이들이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고향 방문, 설날 당일이 아니라도 괜찮아

부모님은 미리 찾아뵙고 연휴엔 꿀휴식
‘재충전 기회’ 해외여행객도 해마다 늘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 주부 고모(35)씨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올해는 설 명절을 맞아 친정에 혼자 내려오게 됐다”며 “명절을 앞두고 며칠 부모님과 시간을 보낸 뒤 설 연휴에는 다시 본가로 들어갈 예정이다”고 올해 일정을 밝혔다.

구미에 사는 박모(39)씨도 “직장 특성상 연휴 기간 계속 업무를 봐야 한다”면서 “평소 명절 연휴에는 아내와 아이들만 친정에 보내고 양가 부모님은 나중에 시간을 내 따로 인사를 드린다. 굳이 명절 당일날 찾아뵙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족의 대이동’이 남의 이야기인 가정들도 많다. 바쁘고 팍팍하게 돌아가는 세상 탓에 설날에도 업무를 놓지 못하는 인구가 늘고 있고, 나름의 사정으로 설날 당일에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학생이나 청년들이 입시 및 구직활동 등의 이유로 설날 가족과 동떨어진 채 자기만의 일정을 보내는 것 역시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설날 당일 부모·자식을 찾지 않는 다른 이유도 있다. 명절을 자신 혹은 가족과의 시간으로 보내고자 외국을 찾는 인원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해마다 증가하고 있기 때문인데, 올해 역시 설 연휴기간 인천공항을 이용하는 여객이 1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지난 설 연휴 기간 귀경길에 나선 가족을 배웅나온 할머니가 포항역에서 손녀들을 꼭 안아주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지난 설 연휴 기간 귀경길에 나선 가족을 배웅나온 할머니가 포항역에서 손녀들을 꼭 안아주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세뱃돈은 모바일로… 선물은 인터넷 주문

영화 보거나 외식 즐기는 가족 늘어
“편리한게 최고” 선물 택배 전달 선호

설 명절 온 가족이 함께 모이더라도 예전과 같이 연을 날리거나 윷놀이를 하는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

대신 온 가족이 영화를 보러 가거나 외식을 하러 나가는 경우가 늘고 있다.

특히, 아이들은 또래끼리 모여 스마트폰을 이용하거나 PC방을 찾아 게임을 즐기는 것이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발달한 기술 역시 설날 풍경을 바꾸고 있다. “편리하면 편리할수록 좋은 거 같다”는 인식이 명절을 거치며 확연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세뱃돈이나 용돈 등을 모바일을 통해 송금하는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고, 귀성길 열차표 예매나 실시간 교통정보 등의 서비스를 모바일 앱을 통해 이용하는 사례도 해마다 크게 증가하고 있다.

두 손 가득 설 선물을 들고가던 모습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불편하게 직접 사들고 옮겨가며 전달하기보다 인터넷 주문을 통해 바로 배달지로 보내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 시민은 “요즘은 무엇이든 편리한 게 최고인 것 같다. 마음만 잘 전달된다면 방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고 밝혔다.

 

지난 설 ‘설맞이 민속놀이 한마당’이 열린 국립경주박물관을 찾은 일가족이 떡메치기 체험을 하고 있다.
지난 설 ‘설맞이 민속놀이 한마당’이 열린 국립경주박물관을 찾은 일가족이 떡메치기 체험을 하고 있다.

“귀성객을 잡아라” 지자체도 적극 홍보

경북도내 전통놀이 체험 다양하게 준비
관광지·유적지 등 무료입장 서비스도

명절을 맞아 먹거리와 볼거리를 찾는 가족단위 여행객이 늘어나며 이들을 붙잡아두기 위한 지자체들의 홍보전이 치열하다. 경북도 역시 설 연휴 귀성객과 관광객을 위해 다양한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연휴가 시작되는 24일부터 27일까지 포항시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내 신라마을에서는 전통 민속놀이 체험과 양말목 직조체험을 할 수 있고, 영주시 선비촌 일원에서는 민속놀이 등 선비촌 세시행사가 진행된다. 의성군 조문국박물관에서는 전통놀이체험, 무료영화 상영 및 SNS 인증 이벤트가 실시되며 의성컬링센터에서는 무료 컬링체험을 해볼 수 있다.

설 다음날인 26일 경주 황리단길 일원에서는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경주국악여행을 주제로 국악버스킹이 펼쳐질 예정이다. 청도군에서는 청도박물관 설맞이 한마당 행사와 한국코미디타운 플리 마켓이 열린다. 연휴기간 중 도내 방문객에게는 다양한 무료입장과 할인혜택도 주어진다. 경주 대릉원, 동궁과 월지, 김유신 장군묘, 포석정 등에서는 설 연휴 내내 한복을 착용한 방문객에게 무료입장 혜택이 있다. 경주 양동마을, 안동 하회마을·도산서원·봉정사, 영주 소수서원·소수박물관·선비촌, 고령 대가야박물관에서는 설날 당일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이밖에 자세한 관광 프로그램 일정은 경북나드리 홈페이지(tour.gb.go.kr) 또는 SNS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상철 경북도 문화관광체육국장은 “설 명절, 지역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이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며 “2020년은 대구경북 관광의 해로서 보다 친절하고 다채로운 관광프로그램으로 관광객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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