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푸생 ‘나는 아르카디아에도 존재한다’(1638). 루브르 박물관 소장

미술이 순수하게 창작자의 미학적 관념을 담고 있다는 생각은 아주 현대적인 발상이다. 미술가의 자율성이라는 것도 역시나 마찬가지이다. ‘중세’의 천년을 두고 보자면 미술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 신의 세계를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형태와 색을 통해 드러내 주는 것이었다.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고 미술의 기능도 달라진다. 이제 미술은 믿고 있는 것을 그리기보다 보고 경험한 것을 묘사하기 시작한다. ‘바로크 시대’의 미술은 권력과 권위를 찬양하는 수단으로 적극 이용되었다. 바로크의 색채가 그토록 화려하고, 바로크의 형태가 그토록 왜곡되어 현란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바로크 시대에 접어들어 정부가 통제하는 미술학교가 생겨났다. 루이 14세의 명에 의해 왕립미술원(1648)이 설립되었다. 프랑스 왕립미술원은 국가의 통제 하에 국가를 위한 예술가를 길러내기 위한 최초의 제도적 교육기관이었다. 프랑스를 모범으로 스페인에 왕립미술원(1744)이 세워졌고, 얼마 후 영국 역시 왕립미술원(1768)을 설립해 미술가들을 길러냈다.

미술이 권력의 통제를 받으면서 자율성 보다는 통제하는 주체의 목적에 적합한 이론적 장치들이 규정과 규칙이 되어 이른바 미술의 ‘모범’이 생겨났다. 주어진 규범과 틀을 벗어나서는 미술가로서 성공할 가능성이 지극히 낮았다. 아이러니 한 것은 가장 경직된 틀로 미술가들의 상상력을 제한했던 시대가 ‘신고전주의’였다는 것이다. 신고전주의는 혁명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 유럽에 유행했던 양식이다. 절대왕정, 귀족문화, 계급주의를 대변하는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를 지나 시민사회로의 대변혁이 일어났음에도 신고전주의가 만개한 것은 아주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신고전주의 미술은 영웅들의 위대한 이야기를 거대한 화면에 서사적으로 담아낸다. 작품의 주제가 충분히 드러나도록 웅장해야 하지만, 표현에 있어서 절제와 논리성이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 신고전주의 영웅들은 아무리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당하더라도 개인의 감정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J.J.빙켈만이 고대 ‘라오콘 군상’에서 발견했듯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을 지니도록 신고전주의의 영웅들은 그려야 했다.

 

자끄-루이 다비드 ‘호라티우스 형제들의 맹세’(1784). 루브르 박물관 소장
자끄-루이 다비드 ‘호라티우스 형제들의 맹세’(1784). 루브르 박물관 소장

인간의 감정을 발견한 시대는 ‘낭만주의’이다. 낭만주의 시대에 접어들자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며 자유분방한 미적 세계를 탐구한 미술가들이 등장했다. 대체로 역사가 그렇듯 미술의 역사 또한 권력의 자기 증언과 큰 맥을 함께 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현대미술에 가까워질수록 미술사의 변혁은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서 이루어진다. 고전주의자들이 안정적이고 균형 잡힌 구도와 색채를 사용했다면 급진적 낭만주의자들은 자유롭고 속도감 있게 붓을 움직였다. 작품의 주제도 그렇다. 잘 알려진 신화보다는 잊힌 북방의 신화들을 다시 불러내거나 신비로운 오리엔트의 이국적 여인들을 작품에 담아낸다. 또 어떤 낭만주의 미술가들은 숭고한 자연 앞에서 보잘 것 없는 인간의 내면을 성찰하게 한다.

낭만주의가 발견한 인간의 감정은 미술이 그 자체만으로 미적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자각을 불러 일으켰다. 이것이 본다는 것과 그린다는 것에 대한 다양한 미학적 실험으로 이어지면서 현대미술의 문을 열어 주었다. 이제 그 누구도 미술에게 권력에 충성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이제 그 누구도 미술은 이래야 하는 것이라며 절대적 가치와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미술은 과연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김석모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