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돌계단 위로 보이는 문수사 극락보전. 문수사는 경북 구미시 도개면 신곡4길 186에 위치해 있다.

겨울은 문수사를 비켜가고 있었다. 햇살이 죄다 문수사에 몰려와 반짝이고 절은 무언가 밝은 기운으로 가득하다. 적막감이 감도는 여느 사찰과는 다르다. 젊은 연인이나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 오듯 드나드는 가족의 모습도 이채롭다.

문수사의 전신인 납석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고종 2년에 폐사되었다. 산 너머 의성으로 가는 열재에 산적과 도둑이 들끓어 그로 인해 폐사되었을 거라 추측한다. 그 후 혜봉 선사가 초가삼간을 짓고 수행하다 꿈에 문수보살을 본 후 그 때부터 절 이름을 문수사로 하였다.

절은 크지 않지만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극락보전이 나타나고 오층석탑을 중심으로 문수사의 사계가 담긴 사진들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별한 행사가 열린 줄 알았는데 늘 손님이 많다고 어느 처사님이 귀띔해 주신다. 천년고찰도 아니고 절의 풍광이 유달리 빼어난 것도 아니기에 그 속살이 궁금하다.

주지 스님 뵙기를 청했다. 불자와 차담을 나누시다 흔쾌히 시간을 내 주는 주지 월담(月潭) 스님, 첫인상이 참 좋다. 과하지 않은 미소도 아름답다. 꾸밈없고 편안한 웃음과 농담을 곁들인 화술에는 오랜 수행이나 숙련된 노력이 따랐으리라. 스님은 스승 혜향 스님에 대한 존경심부터 풀어내신다.

가난하던 시절, 불자들의 시주에 의존하지 않고 손수 농사를 짓고 양봉법을 배워 동네 분들에게 전수해 주며 평생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의 신념을 지키며 절을 키우셨다고 한다. 유일한 제자인 월담 스님은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20여 년 선방을 찾아다니며 수행에만 전념하다 혜향 스님이 입적하자 어쩔 수 없이 문수사 주지를 맡게 된 것이다.

“주지가 되면서 종교를 논하지 않고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도량을 만들고 싶었어요. 틀을 깨지 않으면 소통이 되질 않고 절도 살아남지 못해요. 절이나 집, 회사도 주인이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안 돼요.”

문수사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남다르다. 편안한 가운데 눈빛은 빛나고 말씀은 흐트러짐이 없다. 할 일 많은 스님이 참 행복해 보인다. 직관적으로 기운이 맑고 성실한 분이란 게 느껴진다. 추임새를 넣듯 울어대는 풍경소리마저 경쾌하다.

한때는 고색창연한 사찰의 적막한 고독을 좋아했었다. 고찰만이 풍기는 고즈넉함에 젖어들다 보면 찌든 마음이 씻겨 내려가고 심란함도 잠든다. 그 하나만의 이유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절집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산사에 대한 애정이 깊어갈수록 그토록 좋아하던 고즈넉함은 대책없는 쓸쓸함으로 다가왔다. 불심이 떠나버린 법당의 썰렁함이나 처량한 풍경소리에 나는 때때로 슬퍼졌다.

무작정 변화에 편승하는 사찰을 보면 더 심란하다. 산사 음악회나 비슷비슷한 행사에 치우치는 사찰은 오히려 정체성을 잃고 본질만 훼손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문수사의 변화가 성공적인 것은 주지 스님의 흔들림 없는 목적의식과 성실함 때문이다. 시주를 떠나 진심으로 베푸는 마음에서 존경심과 신뢰감이 묻어난다.

“중은 하루에 세 번 자기 머리를 만져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결코 중의 신분을 잊지 마라는 뜻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자꾸 게을러져서 편한 것만 찾게 되거든요. 스님도 사람이니까요.”

산중 생활은 속세보다 더 나태해지기 쉽다. 어디에서든 스스로 깨어 있지 않으면 자기와의 싸움에서 지고 마는 법이다. 두어 시간은 걸어야 도착한다는 스님의 농담 한 자락을 걸치고 사자암으로 향한다. 적당한 크기의 소나무들이 자라는 솔숲 사이로 ‘솔바람길’이 친절하다. 바람은 장난치듯 소나무 사이를 빠져나가 저 아래 들판으로 달려가다 문수사를 되돌아본다. 나도 잠시 나무 벤치에 앉아 바람소리를 듣는다. 아주 작은 것들이 나를 즐겁게 해준다.

드디어 커다란 암석에 기댄 반쪽자리 전각, 사후전(獅吼殿)이 보인다. 사자의 형상을 한 사자암을 중심으로 지장전과 산신각, 야외 테라스, 어디에서도 멋진 경관은 함께 한다. 사자의 울음 따위는 궁금하지 않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셀프찻집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빈자리가 없다. 와불 형상의 큰 암석 앞에서 책을 보는 아이들, 준비된 다과를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이곳에는 묵언을 강요하는 엄숙한 부처님은 없다. 그저 편안하고 친근한 부처님이 함께 할 뿐이다. 테이블마다 정갈한 다기들과 푸짐한 다과가 손님을 맞고, 찻값은 성의껏 지불하면 된다. 통유리창 너머로 기웃대는 햇살도 오늘은 귀중한 손님이다. 차이와 경계가 없는 곳.

내 안에 차향보다 더 깊고 진한 향기가 돈다. 사후전 석가모니 부처님도 유난히 행복해 보인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말씀보다 책임을 다하는 성직자를 만나면 감동이 배가 된다. 나는 사후전 난간에 서서 빈 몸으로도 하염없이 반짝이는 겨울 들녘을 바라보았다.

“늘 깨어 있어라.”

그제서야 포효하는 사자 울음이 들린다. 아주 지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