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국의 연대기’’

대니얼 임머바르 지음·글항아리 펴냄
역사· 3만5천원

지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제국, 바로 미국이다. 어떤 나라도, 국제연합도 제재를 가하거나 압력을 넣을 수 없는 나라, 오직 내부의 분열과 경제 하락만이 스스로를 약화시킬 수 있는 초강력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그러나 미국만큼 평화, 자유, 인권을 강조하는 나라가 없을 만큼 미국은 20세기 내내 그리고 21세기인 지금도 스스로를 공화국이자 세계 평화를 지키는 파수꾼으로 자임하고 있다. 어떻게 해 미국은 이렇게 강력해졌을까? 왜 미국은 100년이 넘도록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공고히 유지하며, 앞으로 펼쳐질 우주시대에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일까. 기술과 자본, 자원과 영토, 사회와 제도 등 모든 면에서 남들이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앞서간 미국의 성장과정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의 대니얼 임머바르 역사학과 교수는 착안점을 달리해서 이 문제를 생각보자고 말한다. 그는 지난해 출간해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불러낸 저서 ‘미국, 제국의 연대기: 전쟁, 전략, 은밀한 확장에 대하여’(원제 How to Hide an Empire)에서 ‘영토’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미국은 두 종류의 영토가 있다. 나쁜 짓을 하면 처벌을 받는 영토와 그렇지 않은 영토, 법적 규준을 준수해야 하는 영토와 그렇지 않은 영토로 말이다. 전자는 북아메리카 미국 본토이고, 후자는 전세계에 점조직으로 퍼져 있는 다수의 미국령 섬과 제도, 기지들이다. 점묘주의 제국 미국은 식민지, 미국령 등에서 다양한 자원을 획득해왔고, 그곳의 사람들을 활용해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기지로 해 전 세계를 무력으로 제압했다. 그런 영토의 존재가 그간 미국을 얘기할 때는 잊혀졌거나 중요하게 다뤄지지 못했다.

오늘날 미국 지도는 50개주로 구성된 익숙한 모습이다. 실제 영토는 이와는 매우 다르다. 우선 알래스카와 하와이, 괌이 빠져 있다. 이게 전부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푸에르토리코, 미국령 사모아·버진아일랜드, 태평양과 카리브해에 퍼져 있는 섬들 등 훨씬 많은 영토와 군사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에 미군 기지는 800개가 넘는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그 외의 모든 나라가 보유중인 기지를 다 합쳐도 30개에 불과한데 말이다.

이 책엔 ‘로고 지도’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미국을 한정시킨 우리가 익히 아는 그 지도다. 그러나 그 다음 페이지에는 1941년 무렵 미국 영토였던 곳까지 포함시킨 확장된 미국 지도가 제시된다. 알래스카, 하와이, 괌, 미국령 사모아, 푸에르토리코,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태평양과 카리브해의 섬들이 모두 포함된 지도다. 둘의 차이는 확연하다.

미국이 섬들을 점령한 이유는 대부분 군사적 필요 때문이다. 하지만 로고 지도는 대규모 식민지든 아주 작은 섬이든 할 것 없이 모두 배제한다. 게다가 그런 지도는 진실을 호도한다. 로고 지도만 보면 미국은 정치적으로 균일한 공간으로 묘사된다. 각각 동등한 지위를 갖고 자발적으로 편입된 주들로 구성된 연합체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며 사실이었던 적도 없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획득한 조약이 비준된 그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주와 영토의 집합으로 이뤄진 국가다. 각각 서로 다른 법이 적용되는 두 영역으로 나뉜 분할 국가인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20세기의 중반을 지날 무렵 ‘식민지’들을 포기하기 시작한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업그레이드된 눈에 보이지 않는 제국이 이로써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책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 직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연설문 초고 사진이 실려 있다. 직접 펜으로 교정을 본 초고에서는 필리핀이 지워져 있고 하와이가 부각되었다. 연설의 내용은 일본의 미국 공격을 규탄하는 것이다. 필리핀을 지워버린 이유는 당시 미국인들은 필리핀을 전혀 자국의 영토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와이는 달랐다. 미국과 가까웠고, 백인의 거주 비율이 높았다. 실제로는 필리핀이 훨씬 거대한 면적과 인구를 가지고 있었지만 루스벨트는 전쟁에 대한 여론을 고취시키기 위해 필리핀을 없애고 하와이를 부각시켰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2017년 허리케인 마리아가 미국의 해외 영토인 푸에르토리코를 덮쳐 큰 피해를 입힌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푸에르토리코가 미국 땅이라는 걸 아는 미국인은 절반을 약간 넘는 수준이었고, 30세 이하에서는 37퍼센트에 그쳤다. 그러나 실상은 전 세계가 미국의 영토나 기지에 둘러싸여 있는 형국이다. 이것을 사람들이, 특히 미국인들이 인식하지 못한다는 게 이 책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이다. /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