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꼼수는 쩨쩨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정의된다. 바둑에서 꼼수는 정수와는 달리 상대가 욕심을 내는 것을 노려 함정에 빠뜨리는 수를 말한다. 최근 정치판에서 꼼수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바로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된 뒤 자유한국당이 반발하며 창당준비를 하고 있는 ‘비례자유한국당’이 꼼수의 대표적 사례로 등장한다. 자유한국당의 위성 정당인‘비례자유한국당’의 창당준비위원회 결성 신고가 지난 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공고됐다. 사무소 소재지는 ‘서울 영등포구 버드나루로 73번지 우성빌딩 3층’이니 한국당 중앙당사와 같은 주소다. 창준위는 발기 취지문을 통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과 연동형 선거제가 많은 독소조항과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야욕에 눈먼 자들의 야합으로 졸속 날치기로 처리된바, 꼼수는 묘수로, 졸속 날치기에는 정정당당과 준법으로 맞서 반드시 다음 총선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당의 선거법 개정을 꼼수로, 비례정당 창당을 묘수로 재해석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비례정당 창당 자체에 대해 한국당 스스로도 꼼수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하다. 비례자유한국당이 출범하면 4·15 총선에서 한국당은 지역구 후보만, 비례자유한국당은 비례대표 후보만 낼 가능성이 높다. 한국당 의원 30여명을 비례자유한국당에 배치해 원내 3당으로 만드는 방안도 거론된다. 한국당은 지역구 투표용지에서 ‘기호 2번’을, 비례자유한국당은 비례대표 투표용지에서 ‘두 번째 칸’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다.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도 청문보고서 채택을 않겠다는 자유한국당 때문에 난항이다. 자유한국당은 정 후보자를 상대로 동탄 개발과정에서의 개입 의혹이나 채무 관계, 기부금 등을 쟁점화하며 전방위적으로 추궁했으나 ‘결정적 한 방’은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데도 자유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9일 “입법부 수장을 한 분이 총리가 되는 것은 삼권분립을 훼손한 것이라 처음부터 부적격이었고, 도덕성 등 관련 의혹이 여러 개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소명되지 않았다”며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했다. 사실 정세균 후보자는 1년에 한 번 기자들의 투표로 당마다 1명씩 가장 신사적인 의원에게 수여하는 백봉신사상을 12번이나 탄 기록을 갖고 있을 정도로 신사적인 의원으로 유명하다. 보수성향 야당의원들과도 친하고, ‘스마일 정’이란 별명으로 불릴 만큼 온화한 성품에다 6선 관록에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을 지냈으니 국무총리 후보로는 오히려 분에 넘친다고 해야할 인물이다. 이런데도 전직 국회의장이 국무총리를 맡는다고 삼권분립 훼손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정치권에서는 자유한국당의 이같은 행보에 대해 오는 16일 이전까지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나 총선에 출마할 이낙연 국무총리의 행보에 흠집을 내기 위한 꼼수로 해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나라 정치가 어려운 것은 정정당당한 정수가 아닌 꼼수의 횡행 때문은 아닌가. 꼼수 없는 정치가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