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북국의 도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활약한 S-56 잠수함을 개조한 잠수함 박물관. 내부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승무원들이 사용했던 물건들을 전시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활약한 S-56 잠수함을 개조한 잠수함 박물관. 내부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승무원들이 사용했던 물건들을 전시하고 있다.

◇러시아 입국이 이렇게 쉬웠다니!

공기 속 습기가 얼어 빛을 내며 흩날렸다. 귓불을 지나는 찬바람 매서웠다. 네오 로만티카 호에서 내리자마자 북국의 도시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처음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던 날(5월 13일)은 봄이었고 내가 사는 한반도의 남녘이나 블라디보스토크나 따뜻하기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12월의 추위는 매서움의 차이가 컸다. 겨우내 눈 구경하기가 쉽지 않은 곳(경남 진주)에 사니 이런 풍경을 보는 일은 색다른 경험이다.

 

여권 입국도장 찍으면 러시아 시내가 눈앞에
현지인보다 관광객 많았던 ‘아르바뜨 거리’ 등
아쿠아리움 등 시내 곳곳엔 한글 간판도 걸려
자유여행 왔다면 웬만한 곳은 걸어서도 해결

제2차 세계대전 중 사망한 선원을 기리는 추모비와 루스키 섬을 연결하는 졸로토이 대교. 이곳에 서면 블라디보스톡 항구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사망한 선원을 기리는 추모비와 루스키 섬을 연결하는 졸로토이 대교. 이곳에 서면 블라디보스톡 항구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크루즈 여행의 장점은 입출국 절차가 너무 간단하다는 것. 하선 시간보다 일찍 나와 카페테리아에서 쉬고 있었다. 정복을 입고 키가 훌쩍 큰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샤프카(러시아 털모자)를 눌러쓰고 내 앞을 지났다. 잠시 그들을 보며 직원을 뽑는 기준이 키가 아닐까 생각했다. 복도를 걷고 있는데 모델들의 런웨이를 보는 듯했다. 10명쯤 될까, 그들은 승객들의 여권에 입국허가 도장을 찍기 위해 탄 것이다. 기항지 관광을 위해 하선할 때 승객들은 따로 출입국관리사무소를 거치지 않고 맡긴 여권을 받아 바로 시내 관광을 할 수 있었다. 1200명이 넘는 승객들이 한꺼번에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들이닥친다면 거기서 허비하는 시간만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5월에 오토바이를 가지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을 때는 당연히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러시아에서 줄을 서는 건 일상”이라는 이야기를 하도 듣고, 각오해선지 적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줄 서고, 또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라는 건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자마 바로 실감했다. 그런데 크루즈를 타고 오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일사천리였다. 배에서 내려 시내 지도를 얻기 위해 여객선터미널에 들어갔더니 공연이 한창이었다. 가벼운 옷차림을 한 수병들이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크루즈 입항을 축하하기 위해 (테트리스에도 나오는) 코사크 댄스를 추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앉았다 뛰어오르길 빠른 속도로 반복했다. 코사크 댄스는 보기만 해도 신난다. 수병들이 리듬에 맞춰 발을 구르고 뛰는 모습은 흡사 초원을 힘차게 내달리는 코사크의 준마를 연상케 한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이 코사크 댄스는 원래 15세기 이후 러시아 서남부 지역(오늘날의 우크라이나)에 살며 용맹을 떨치던 코사크족의 전통춤이었다. 유목과 농사를 병행했던 그들은 태생부터 전사였고, 이런 전통은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이어졌다. 코사크 기병대의 막강한 전투력은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을 막아내고 또 후퇴하는 프랑스군을 잔인하게 제압하며 널리 알려졌다. 크림전쟁,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활약한 그들의 무용담은 ‘세상에서 가장 용맹한 기병대’라는 전설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1918년 러시아 혁명 이후 코사크 기병대는 해산되고 일부는 차르의 백군으로 또 일부는 볼셰비키의 적군으로 나뉘게 된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영화 ’전함 포템킨’의 명장면 ‘오데사 계단의 학살’에서 반란군을 잔혹하게 학살하던 병사들이 바로 백군 편에 섰던 코사크들이었다. 주변 이슬람민족인 타타르족과 투르크족에 맞서 땅을 지키고자 했던 코사크들은 어쩔 수 없이 강대국이었던 러시아에 협력할 수밖에 없었고, 또 월등했던 군사적 능력 때문에 이용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능력은 러시아가 시베리아로 영토를 확장하는데도 물론 많은 도움을 주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시작점을 알리는 기념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연결된 철도의 길이는 9288킬로미터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시작점을 알리는 기념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연결된 철도의 길이는 9288킬로미터다.

◇아시아의 유럽, 과거의 영화가 관광객을 불러들이다

여객선터미널을 나오니 풍경이 익숙했다. 출발할 때와 돌아올 때 10일 가까이 이 주변을 돌아다녔으니 그럴 밖에. 블라디보스토크 관광에 주어진 시간 14시간(8시부터 22시까지)이었다. 여행사에서 음식, 문화, 역사… 여러 주제에 맞춰 다양한 여행 프로그램을 준비해 따로 현지 정보를 수집하지 않아도 편히 다닐 수 있었지만 이미 가본 곳들이 많아 편히 자유롭게 다니기로 했다.

아시아의 동쪽 끝자락에 있으나 유럽의 모습을 가진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의 힘이 알래스카까지 미치던 시절에는 알래스카와 연해주에서 생산된 모피가 집결하는 항구였으나 동북아에서 힘을 과시하고 싶었던 알렉산드르 2세 시절(재위 1855-1881) 군항으로 발전했다. 알렉산드르 3세 시절 공사를 시작해 니콜라이 2세 치세가 되어서야 공사가 끝난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연결된 이후 블라디보스토크는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1903년 완공된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블라디보스토크 역에서 시작해 모스크바 야로슬라브 역까지 총 길이가 9288킬로미터. 여객터미널 바로 옆에는 고풍스런 블라디보스토크 역이 있고 승강장으로 내려가면 시베리아 횡단 기념탑을 볼 수 있다. 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이 있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 노동자뿐만 아니라 차르를 반대했던 수많은 이들이 시베리아로 끌려와 노역해야 했다. 그들의 피땀이 블라디보스토크의 영화를 만든 토대였다. 아무리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다 해도 길이 이어지지 않으면 통치할 수 없다. 철도를 연결하고 부동항 블라디보스토크에 함대를 배치한 이후에야 러시아는 동북아에서 제대로 힘을 과시할 수 있었다. 유럽 도시를 연상시키는 블라디보스토크의 풍경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것이다. 고풍스런 건물이 즐비한 시내를 걷노라면 이곳이 유럽 한복판인지 아시아의 끝자락인지 알 수 없다. 과거 영화를 누렸던 흔적들이 이제 아시아에서 유럽의 향취를 느끼고픈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블라디보스토크가 다시 발전하는데 밑거름이 되고 있다.

크루즈선을 타고 온 1200명이 넘은 관광객이 단 하루 쓰고 가는 돈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긴 힘들지만 먹고 마시고 작은 기념품을 사더라도 블라디보스토크의 경제에 도움이 될 건 확실하다. 거리에도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관광객을 쉽게 볼 수 있다. 번화한 아르바뜨 거리에는 현지인보다 관광객이 더 많고, 한글 간판도 쉽게 볼 수 있다. 패키지가 아닌 자유 여행을 왔다면 웬만한 곳은 걸어서 돌아볼 수 있다. 아르바뜨 거리, 잠수함 박물관, 아쿠아리움… 그 외 몇 곳 시내 명승지를 돌아보는 건 하루면 충분하다. 느긋하게 루스키 섬이나 우수리스크, 항카호까지 모두 다녀오려면 일주일도 모자랄 테고. 이번처럼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다닐 수 있다면 여행 상품을 미리 신청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편안하게 버스를 타고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다닐 수 있으니 처음 블라디보스토크를 찾았다면 차라리 그게 나을 수도.

 

블라디보스토크 항과 졸로토이 대교의 이른 아침 풍경. 러시아의 중요한 군항인 블라디보스토크항에선 쉽게 군함들을 볼 수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항과 졸로토이 대교의 이른 아침 풍경. 러시아의 중요한 군항인 블라디보스토크항에선 쉽게 군함들을 볼 수 있다.

◇굴요리전문점부터 북한식당까지… 블라디보스토크의 맛

짧은 시간 머무르는 동안 블라디보스토크의 진미를 모두 맛보았다.(전에 왔을 땐 그러지 못했다. 모두 동행했던 선배 덕분이다) 블라디보스토크가 최근 인기를 끌기 시작한 이유는 유럽의 풍광을 가진 덕분이었지만, 근해에서 많이 잡히는 킹크랩과 대게 등 해산물을 저렴한 비용으로 맛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르바뜨 거리 주변에는 이름난 해산물 식당이 여럿 자리 잡고 있고 우리보다 훨씬 싼값에 메뉴를 고를 수 있다. 시내를 벗어나 현지인들이 찾는 바닷가 식당을 찾으면 싱싱한 킹크랩과 대게를 사서 직접 조리해 먹을 수도 있다. 굴요리전문점에서 와인과 굴찜으로 시작해 북한식당(블라디보스토크에는 세 곳의 북한식당이 있고 대게찜 등 해산물을 먹을 수 있는 곳은 고려관이다)에서 러시아 맥주와 녹두전도 먹었다. 금강산식당은 아르바뜨 거리에서 약 2.5킬로미터 떨어져 있었지만 가는 길에 중앙광장, 잠수함 박물관, 개선문, 졸로토이 대교 옆 제2차 세계대전 중 사망한 선원들을 기리는 추모비까지 둘러볼 수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뿐만 아니라 러시아 대부분 도시들은 이런 전몰기념비를 레닌 동상만큼 쉽게 볼 수 있다. 연합국 힘을 합쳤던 서부전선과는 달리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에 홀로 맞섰던 소련은 700만 명 넘는 전사자를 냈다. 독일군 전사자 350만 명 중 80%가 동부전선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얼마나 치열하게 공방전을 벌였는지 알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 전쟁이다.

금강산식당에서 아르바뜨 거리로 돌아올 땐 직원에게 택시를 불러 달라 부탁했다. 택시비는 300루블(약 6천 원)이었다. 조금 먼 거리라도 택시를 잘 활용한다면 문제 없이 다닐 수 있다. 카카오택시처럼 얀덱스(Yandex) 어플을 설치해서 사용하면 된다. 아르바뜨 거리에 도착해서 킹크랩 전문점에서 벨루가 보드카 한 잔 마시는 걸로 이번 크루즈 여행의 마침표를 찍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킹크랩과 대게, 각종 해산물 요리로 유명하다. 북한식당 고려관에서 주문했던 대게찜과 평양소주, 대동강맥주.
블라디보스토크는 킹크랩과 대게, 각종 해산물 요리로 유명하다. 북한식당 고려관에서 주문했던 대게찜과 평양소주, 대동강맥주.

아르바뜨 거리 식당에서 불콰한 얼굴로 나와 여객선터미널까지 걸었다. 배에 오르기 전 레닌 동상 앞에서 환하게 불을 밝힌 블라디보스토크항과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그가 차르의 압제에서 농민들을 구하기 위해 일으켰던 혁명은 이제 묵은 과거가 되었고, 그는 상징으로 남았다.

만약 그가 살아와 이 자리에 선다면 과연 혁명이 가능할까? 불가능할 것이다. 물질에 대한 인간의 깊은 욕망은 압제와 불평등을 벗어나려는 짧은 혁명기에만 잠시 사라진 척할 뿐이라고, 돌아가는 크루즈에 오르며 생각했다.   /조경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