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재 포항예총 회장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

2020년 경자년 새해가 밝았지만 지난해 송년회 기억을 떠올려 본다. 그날은 대낮부터 송년모임이 있었다. 연협(연예협회) 회원들의 송년회였다. 예총의 9개 예술단체 중 가장 힘겨운 한 해를 보냈을 협회가 바로 연협이다. 지자체의 보조금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사정이라 모든 행사를 회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회비로 운영하였으니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례행사를 빠뜨리지 않았으며, 송년파티는 알차게 준비하였다. 행사를 시작하면서 먼저 ‘가요발전을 위하여 열정적으로 노력하다 안타깝게 갑자기 먼 길을 떠난 K형에게 묵념’을 드렸는데, 그에 대한 추억으로 가슴 한켠이 아릿하였다.

구랍 20일 경, 이른 새벽에 전화벨이 울렸고 K형이 타계했다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들었다. 불과 며칠 전, 예총이 주관한 ‘예술인한마당’에서 특유의 활발한 무대매너로 ‘시골총각’을 멋지게 부르던 모습이 생생한데, 그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니…. 돌아보면 아쉽지 않은 이별이 어디 있을까마는 K형과의 이별이 특히 안타까운 것은 그와의 추억이 각별하기 때문이다. 나보다 한, 두 살 위인 그는 누구보다 웃음이 많았고 긍정적인 성정을 가진 인정 많은 이웃이었다. 그는 평생을 밝은 얼굴로 웃고 노래하며 봉사하는 무명가수의 삶을 살았다. 40여 년간 대중음악의 한 길을 걸으며 무대 위에서나 현실의 삶에서 언제나 웃는 모습이었고, 불귀의 길을 떠나기 전날에는 모친상을 당한 후배의 문상을 위하여 먼 길을 마다않고 다녀온 정 많은 시골총각이었다.

아침 일찍 빈소에 도착하니 망자임을 알리는 모니터 안에서 가족이라고는 딸 둘의 이름이 적혀있을 뿐이었다. 그의 대표곡인 ‘시골총각’이 나직하게 들리는 분향소에서 연협의 지인들에게 들은 그의 삶은 평생을 혼자서 외롭게 노래하며 살아온 외길이었다. 핑크색셔츠를 즐겨 입었고, 돋보기안경 너머의 큰 쌍꺼풀, 구김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그의 뒤에 웅크린 고독의 무게를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심장에 지병이 있었으나 경제력 부족으로 고가인 심장박동 보조기를 착용하지 못하여 위험요소를 늘 지니고 있었으니, 40년을 한결같이 무대 위에서 노래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였으나, 정작 자신은 심장의 고통을 안고 고독과 빈손으로 맞서왔다 생각하니 대중예술인들의 삶이 얼마나 팍팍한가를 짐작할 수 있는 단면을 본 것 같았다. 밤늦도록 쓴 소줏잔을 기울이며 그를 추억한 동지들은 예술과 현실의 삶이라는 엄혹한 경계에서 고뇌하는 연예예술인들의 삶에 좀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간절히 소망하였다. 초등학교 시절 그의 품을 떠나 서른을 넘긴 두 딸은 어렵게 연락이 닿아 장례식에 겨우 참석하였고, 연협 동료들이 곁을 지키던 외로운 유해는 고인의 평소 바람대로 화진해수욕장 앞바다에 뿌려졌다. 부디 저승에서는 튼튼한 심장으로 넓은 바다를 자유롭게 유영하기를.

함께했던 대만여행에서 입었던 귀여운 빨간조끼, 그 모습이 새삼 그립다. 이제 우리는 멜빵바지에 핑크색 넥타이를 매고 돋보기안경 너머로 큰 쌍꺼풀의 맑은 눈으로 환하게 웃으며 부르는 무명가수의 ‘시골총각’을 어디에서 들을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