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희 덕

후두둑 빗방울이 늪을 지나면

풀들이 화들짝 깨어나 새끼를 치기 시작한다

녹처럼 번져가는 풀은

진흙뻘을 기어가는 푸른 등처럼 보인다

어미 몸을 먹고 나온 우렁이 새끼들도 기어간다

물과 함께 흔들리고 있는 풀들

그사이로 빈 우렁이 껍데기들 떠다닌다

기어가는, 그러나 묶여 있는

고여 있는, 그러나 흔들리는

비가 아니었다면

늪은 무엇으로 수만 년을 견뎠을까

무엇으로 흔들림의 징표를 내보였을까

후두둑,

후두둑,

후두후둑,

빗방울이 늪 위에 그려넣는 무늬들

오래 고여 있던 늪도

오늘은 잠시 몸이 들려 어디론가 흘러갈 것 같다

수만 년 생명의 보고인 우포늪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시인은 빗속에서 이뤄지는 생명체들의 생생한 움직임을 역동적인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시의 제목처럼 수만 년을 고여 있고 엎드려 있지만 하나하나의 생명체들은 끊임없이 흔들리며 생명운동을 이어가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