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숙 프리랜서

연초에 빠뜨리지 않는 활동 한 가지가 있다. 지난해 바인더에 꼬박 작성한 플래너를 보며, 머물렀던 시간의 흔적을 되짚어 보는 일이다. 이를 토대로 새로운 한 해 계획을 짠다. 당시에는 상황에 함몰되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던 부분을 이때 새롭게 발견하는 기쁨이 있다.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그 순간을 잘 이겨냈구나. 포기했으면 후회할 뻔했지?’ 이런 아찔함을 느끼기는 일도 있다. 무언가 쉽게 포기하면서 얻는 안락함보다 고비를 넘겨 쟁취한 승리의 달콤함이 수십, 수백 배 더 가치 있음을 알아간다.

한때 자기계발서를 부지런히 읽으며 목표를 세운 적이 있었다.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반드시 한 가지를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책에서는 꿈을 이루는 공식을 와닿게 설명했다. R(꿈의 현실화)=V(생생한 vivid) D(꿈꾸기·dream), 즉 생생하게 꿈을 꾸면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의미였다.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들지 않고 이루고 싶은 바를 생생하게 실체를 보듯 꿈꾸라는 뜻이다. 실천하려 애썼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무의식 속에 있는 부정적 생각을 없애는 방법으로 내 소망을 가족 앞에서 말로 선포하기로 했다. 10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엄마가 2009년 12월에 새 자동차를 살 건데 차종은 어떤 게 좋을까?” 모두 피식 웃음을 터뜨리면서 비아냥거렸다. “엄마, 이번에는 대체 무슨 책을 읽은 거야?” “그때쯤 YF 쏘나타가 나온다고 하던데.” 가족들이 농담처럼 말했다. 이런 반응은 너무도 당연했는데 당시 내게는 돈도 계획도 그렇다고 희망이 있었던 상황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로또를 맞지 않고서 3천만 원이 넘는 새 차를 장만하기란 꿈도 꿀 수 없음을 가족만 아니라 나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일단 선포하고 행동으로 옮겼다.

아직 정식 배포도 안 된 신차 카탈로그를 어렵게 구해 주방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놓고 매일 마음속에 새기려고 애썼다. 의심이 스며들 때마다 스스로를 타일렀다. “확신을 가져라. 의심은 금물이다. 주위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당신의 내부의 부정적 자아가 어떤 소리를 하든 상관하지 마라. 오직 믿음에 믿음만 더하라.”

결론을 말하자면 가족에게 선포한 예정일보다 한 달 앞당겨 차를 탈 수 있었다. 신기했다. 부정적인 생각을 차단하고 긍정의 소리를 들려주는 단순한 행위가 힘이 있다는 걸 경험해 보았다. 자신이 생겼다.

이 일을 계기로 작은 꿈을 하나씩 이뤄가는 성취감이 벽돌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생각의 힘이 얼마나 놀라운지, 또 얼마나 강렬한지 경험을 통해서 깨닫고 용기를 더해 다른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정확히 알면 행동이 쉬워진다. 한 가지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천해 이루어 보는 경험을 해 보는 것이다. 가끔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오거나, 내 앞에 나타나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보이진 않지만, 에너지 파장으로 전해지는 힘일 것이다.

말이 미치는 영향을 실험한 적이 있다. 프로그램을 보다가 신기해서 직접 해 보았는데. ‘사랑해’라고 말한 밥은 하얀색 곰팡이가, ‘짜증 나’라고 말한 밥은 검고 고약한 냄새까지 풍기는 곰팡이로 변하는 것을 경험했다.

한 해를 돌아보며 내가 맺은 긍정의 열매와 부정의 열매를 돌아보았다.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은 실상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좋은 말은 긍정적 상황을 만들어 가는 씨앗이다. 좋은 말, 좋은 생각으로 시작하는 기운은 꿈을 이루는 초석이다.

무심코 던지는 말 한마디, 생각 한 자락이 나의 몸에 기록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예쁘고 먹음직스러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힘쓰고 싶다. 2020년을 맞으면서 “내가 할 수 있을까?”“난 이렇게 못난 모습일까?” 의기소침했던 마음, 아쉬웠던 마음을 “난 괜찮은 사람이다“ “나는 꿈을 이룬다”라는 긍정의 소리로 바꾸어 보자. 실험 삼아 조금 큰 도전일 수도 있는 꿈 하나를 선택하고 즐겁게 상상해 보면 어떨까? 작은 점 하나를 찍는 것으로 무엇이든 시작하는 법이니까. 2020년 우리 모두 긍정의 꿈을 꾸는 한 해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