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다수의 힘’을 뼈아프게 경험한 보수정치인들이 새해 벽두에서부터 ‘통합’ 의지를 피력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유승민(대구 동을) 의원이 새해 첫날 보수대통합 추진 의지를 각각 밝혀 관심이 쏠린다. 오는 4월로 예정된 21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민심 쟁취를 위한 대회전을 벼르고 있다. 아무리 통합이 급해도 제대로 된 ‘가치연대’, ‘가치통합’이 아니라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정치집단의 통합 내지는 연대는 철저하게 ‘가치’ 중심으로 추구돼야 한다는 원칙은 바른미래당의 사나운 내부분열 현상에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유승민 의원의 “2년 전에 결혼을 잘못해서 고생을 많이 했다”는 말은 절절한 깨달음의 산물로 들린다. 손학규의 ‘중도’와 유승민의 ‘중도’ 사이의 거리가 멀고도 멀다는 사실이 뒤늦게 입증된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 ‘통합’을 말하는 황교안의 ‘보수’와 유승민의 ‘보수’의 거리는 어떨까. 예감컨대 두 사람이 말하는 ‘보수’ 역시 쉽사리 통합을 말해서는 안 될 만큼 먼 거리에 있지 않을까 싶다. 황교안은 자기가 설계하는 이른바 ‘보수 빅 텐트’ 안에 유승민이 얌전하게 들어오기를 바라는 것 같지만, 유승민은 통합의 원칙으로 밝힌 ‘가치혁신’ 설계에 동의하지 않는 한 손잡을 이유가 없다는 신념인 듯하다.

해외에 있던 안철수가 정계복귀를 선언하는 새로운 변수도 발생했다. 안철수의 파급력이 얼마나 될지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으나, 그가 중도보수 정치의 향방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은 무시하기 어렵다.

현 상황에서 ‘보수대통합’의 성공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황교안의 용단과 변화가 전제돼야 한다. 자유한국당의 ‘수구꼴통’ 이미지가 청산되지 않는 한 통합은 공염불이다. 아니, 어설프게 통합 쇼를 벌였다가는 더 큰 분란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보수통합’의 성패는 여전히 중도 민심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문재인 정권의 실정에 대한 성토만으로 확보할 정치 공간은 좁디좁다.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가치재정립’을 통한 비전 공유가 먼저다. 산술적 더하기 게임에 머무는 어설픈 껍데기 통합은 ‘보수 폭망’의 지름길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