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경자(慶子)년 쥐띠해

만봉스님作 ‘쥐’.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2020년 경자년(庚子年)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흰 쥐의 해로 풍요와 희망과 기회의 해로 불리고 있다. 12년마다 돌아오는 쥐의 해 중에서도 올해가 특별히 흰쥐의 해로 불리는 까닭은 육십갑자를 이루는 10간(干) 중 경(庚)과 신(辛)이 백색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흰 쥐는“쥐 중에서도 가장 우두머리 쥐이자 매우 지혜로워서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데다가 생존 적응력까지 크게 뛰어나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의 생로병사를 위해 각종 실험에 쓰여 희생되는 현재 인류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동물 또한 흰 쥐이다.

예로 부터 예지력·다산·부지런한 동물로 알려져
올해는 가장 지혜롭다 알려진 ‘흰쥐의 해’
유교에선 간신이나 수탈자로 비유 부정한 동물로 인식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쥐에 대한 개념은 ‘영리하다’‘재빠르다’ ‘머리가 좋다’라는 일반적인 관념 외에 어떤 재앙이나 농사의 풍흉, 뱃길의 사고를 예견해 주는 영물로 인식하기도 했으며 이와 상반되게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동물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쥐는 때때로 고양이와는 대조적 이미지로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약자는 영리하며 천성이 착하나 구차하게 가난하다. 강자는 무식하고 덩치가 크고 많은 재력을 소유하고 있다. 여기서 쥐의 이미지는 약자를 대변한다.

이 같은 생태적 특성으로 인해 쥐는 예부터 인간의 삶과 가까웠고, 역사 속에서 다양한 문화적 표상으로 나타났다.

한반도에서는 구석기 유적지에서 쥐의 뼈가 발견됐고, 신라 땐 십이지신상의 하나로 능묘, 탑, 불구(佛具), 생활용품 등에 새겨졌다.

조선시대에는 쥐 두 마리가 수박을 훔쳐먹는 모습을 그린 신사임당의 ‘초충도’ 등 쥐의 생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들이 많이 그려졌다.

하지만 쥐는 사람에게 별로 유익한 동물이 아니다.

의학 실험용으로 기여하는‘공로’가 있지만 생김새는 얄밉고 징그러우며, 행동은 경박하고 좀스럽다. 진 곳, 마른 곳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는 탓에 지저분하며 병을 옮긴다.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는 하지만 예부터 쥐는 재물과 다산,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십이지의 자(子)는 번식할 자(滋)와 동음으로 통하면서 다산을 뜻하게 됐다.

또 아무리 딱딱한 물체라도 조그만 앞니로 뚫고, 부지런히 먹이를 모아놓는 근면성과 인내력으로 쥐는 풍요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쥐띠 해에 태어난 사람은 식복(食福)과 함께 좋은 운명을 타고 난다고 했고,‘쥐띠가 밤에 태어나면 부자로 산다’는 말도 생겼다.

정월의 첫째 자일(子日)을 상자일(上子日),일명 ‘쥐날’이라고 했는데, 농부들은 이날 쥐를 없애기 위해 들에 나가서 논과 밭두렁에 쥐불을 놓았다.

마을 아이들은 미리 횃불을 만들어 뒀다가 저녁 달이 떠오르면 논둑·밭둑·냇둑을 따라 불을 놓고 삼삼오오 쥐불놀이를 즐겼다.

그러다 큰 내의 둑이나 다리 앞에서 마을 아이들이 모두 모이면 이웃 마을과 쥐불싸움을 벌였다.

준비한 홰가 먼저 떨어지거나 불을 지른 넓이에 따라 승패가 갈렸고, 마을로 돌아와선 음식을 나눠 먹으며 밤을 새워 놀았다.

또 쥐는 농사의 풍흉과 인간의 화복을 점치고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영물로 받아들여졌다.

영화에서 지진이나 화산 폭발 등의 자연재앙을 예고할 때 흔히 나오는 ‘쥐떼 장면’은 쥐의 예지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선원들 사이에서 널리 퍼진 ‘쥐떼가 배에서 내리면 난파한다’거나 ‘쥐가 없는 배에는 타지 않는다’는 속신(俗信)도 쥐의 예지력 때문에 생긴 것이다.

집안 구석구석,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는 쥐의 영리함과 약삭빠름은 ‘정보통’의 캐릭터로 나타나기도 했다.

‘황금구슬’이라는 옛날 이야기에는 황금구슬을 도둑맞은 노부부 집의 개와 고양이가 구슬을 훔쳐간 사람의 집에 가서 대왕쥐를 잡는 장면이 나온다.

집안 사정에 환한 대왕쥐를 다그치면 황금구슬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도 쥐의 정보통 캐릭터를 보여준다.

종교에 따라 쥐에 대한 평가도 다르다.

불교의‘아함경(阿含經)’에서는 인간의 일생을 갉아먹는 흰쥐와 검은 쥐는 시간의 상징이다. 불교에서는 십이지 신이‘약사경(藥師經)’을 외우는 불교인을 지키는 신장으로 우리나라의 십이지 신앙은 약사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유교에서는 간신이나 수탈자에 비유되는 부정한 동물이고, 기독교에서도 사탄이나 탐욕자, 악의 상징이다.

반면 힌두교에서는 쥐를 사려 깊은 동물, 예지의 동물로 해석하는데, 끊임없는 노력으로 성공을 거둔다는 의미에서 코끼리 얼굴을 한 ‘지혜의 신’ 가네샤의 수레를 끄는 동물이 바로 쥐다.

생긴 것은 볼품 없고 인간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쥐. 그러나 자연계의 일원으로서 쥐를 보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근면하고 강인한 생명체다.

경자년을 맞이해 쥐의 부지런함과 풍요로움, 미래예측력을 배워 희망을 키워보자.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자료제공=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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