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향 림

봄날이 빠르게 화면 위 아이콘처럼 떴다 지워진다

임대 아파트 유리벽에

갈 곳 없는 비애 한 가구가 남았다

봄은 강 둔치에서 느리고 낮게 포복해 온다

단지 밖

기우뚱 넘어진 마음 일으킬 생각조차 없는 경사로

멀리 부서진 휠체어 한 대

햇빛만 쬐고 앉았다

누가 두 발을 벗어두고 갔다 굽이 다 닳았다

햇빛 두어 점이 눈이 부시도록 반짝인다. 수화(手話)하느라

어디든 낯익은 역에 내려서

가슴 쓸어내리라

장애로 남은 발목으로 풀들은 골목을 절뚝이며

맴돈다. 황사 바람이 지나갔는지

쌀겨처럼 보얗게 시간을 뒤집어썼다

아무리 귀 막아도 들린다

시멘트벽에 기대어 근육위축증으로

몸을 뒤트는

봄풀의 관절 풀리는 소리

시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여기저기 봄날의 풍경 몇 장에 눈도 마음도 함께 멈추게 된다. 화사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봄날이지만 시인의 눈은 굴곡지고 상한 사물과 현상에 머물며 거기에 사랑의 시선을 얹어놓고 있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눈으로 봄을 그려내는 섬세한 시인을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