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디미방’ 영인본 첫 장. 영양 ‘음식디미방’ 체험관에서 볼 수 있다.
‘음식디미방’ 영인본 첫 장. 영양 ‘음식디미방’ 체험관에서 볼 수 있다.

지난 1년간, 연재에 관심을 보여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지면을 허락한 경북매일신문과 취재 과정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첫 칼럼에서 “왜 경북의 음식인가?”를 이야기했다. 경북은, 흔히, “음식이 없는 곳, 음식 맛이 없는 곳”으로 못 박는다. 그렇지는 않다. ‘맛’의 기준이 다르다.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이 많다. 경북 음식은 맛으로 만나는 음식이 아니다. 출발부터 다르다. 경북의 음식은 맛이 아니라 ‘법도(法道)’다. ‘법도’에 맞는 음식’이다.

첫 칼럼에서 인용한, 탁청정 김유(1481~1552년)의 ‘수운잡방(需雲雜方)’이 법도에 맞는 음식의 예다. 탁청정은 조선 초기의 문사(文士)다. 벼슬도 구하지 않고 전원생활을 추구했다. 일생을 손님맞이에 힘썼다. ‘수운잡방’은 여러 가지 음식 만드는 법을 기술한 책이다. 남성인 유학자가 왜 음식에 관한 책을 기술했을까? 음식이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의 주요 도구이기 때문이다. 탁청정은 손님맞이 음식과 그 음식을 만들기 위한 재료, 장(醬), 지(漬), 초(酢) 술[酒, 주]에 대해서 정리했다.

유교적 관점이다. 음식은, 제사 모시고, 손님맞이에 필수적인 도구다. 남자인 유학자가 음식 관련 책을 기술한 이유다.

오늘날 경북은 100년 전, 경상좌도와 대부분 겹친다. 갑오경장 이전에는 전국 팔도를 좌와 우로 나누었다. 한양에서 바로 보기에 낙동강 왼쪽은 경상좌도, 오른쪽은 경상우도다. 경북은 대부분 경상좌도 지역이었다.

경상좌도는 유교의 중심지다. 고려를 마지막까지 지켰던 포은 정몽주(영일만, 영천),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한 삼봉 정도전(영주)은 좌도의 유학자였다. 포은과 삼봉의 스승 목은 이색(영덕), 야은 길재(구미 선산), 도은 이숭인(성주)도 좌도와 연관이 있는 유학자였다.

성리학을 대표하는 퇴계 이황(안동)도 좌도의 유학자였다. 경상우도가 ‘남명 조식의 나라’라면, 경상좌도는 ‘퇴계의 나라’였다. 1670년 무렵, 정부인 장계향이 기술한 ‘음식디미방’이 나왔다. 장계향의 친정아버지 경당 장흥효(안동), 남편 석계 이시명(영해, 영덕), 아들 갈암 이현일(영해)은 퇴계의 학통을 이었다.

 

경북의 추어탕은 붉지 않다. 우거지, 시래기 등을   사용한다. 상주 ‘꽃들추어탕’.
경북의 추어탕은 붉지 않다. 우거지, 시래기 등을 사용한다. 상주 ‘꽃들추어탕’.

조선 말기 상주에서 ‘시의전서’가 발견되었다. ‘수운잡방’ ‘음식디미방’ ‘시의전서’ 등 음식 관련 책이 모두 ‘음식 맛없는’ 경북에서 나왔다. ‘법도’를 지키는 ‘퇴계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경북은 ‘곰탕의 나라’다. 영천에 가면 ‘포항 할매곰탕’이 있고, 포항에는 ‘안동할매곰탕’과 ‘장기식당’이 유명하다. 경북의 웬만한 중소도시, 시골 골목에는 곰탕집이 있다. 시장통에는 30년, 50년을 넘긴 곰탕집이 흔하다. 설렁탕 집은 귀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귀한 곰탕집은 널리고 널렸다. 소머리곰탕이 있는가 하면, 경북 북부에는 사골곰탕도 흔하다.

서울에는 설렁탕 집은 많으나 곰탕집은 그리 많지 않다. 오래된 설렁탕 노포도 마찬가지. 메뉴에서 ‘곰탕’을 찾기는 어렵다. 왜 곰탕이 경북 지방에만 흔할까? 곰탕이 ‘봉제사접빈객’의 으뜸 음식이기 때문이다. 곰탕은 대갱(大羹)이다. 대갱은 모든 음식의 기준이다. 대갱은 고기 곤 국물이다. 으뜸이고 기준이니 조미도 하지 않는다. “매실과 소금 양념도 하지 않은 국물”이 대갱이다.국물 음식이지만 굳이 국물로 가르지 않는다. 제사상에 밥과 국이 있는데 반드시 곰탕을 올리는 이유다. 양깃살(양짓살)에 다시마, 무를 넣고 푹 곤다. 그뿐이다.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華而不侈, 화이불치] 음식이다.

민간에 고기가 흔할 리 없다. 소머리(소대가리)를 삶는다. 고기를 발라 넣고, 뼈 곤 국물에 밥을 만다. 소머리곰탕이다. 고기를 도축하고 나면 뼈가 남는다. 역시 곤다. 소, 돼지는 다리가 네 개다. 사골(四骨)이다. 사골을 곤 국물이 사골곰탕이다. 정육(精肉)이 귀하니 소 대가리와 다리뼈도 사용한다. 갈비뼈, 다른 잡뼈도 넣는다. 내용물은 설렁탕과 닮았으나 경북에서는 굳이 곰탕이다. 곧이 곧 대로의 곰탕은 아니되, 곰탕이다.

 

곰탕이되 곰탕이 아닌 소머리곰탕. 포항 ‘장기식당’.
곰탕이되 곰탕이 아닌 소머리곰탕. 포항 ‘장기식당’.

경북 음식의 또 다른 키워드는 국수다. 곰탕집 못지않게 군데군데 국숫집이 있다. 큰길가, 동네 골목에도 있지만, 시장에서도 30년 이상의 국수 노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왜 국숫집이 많을까? 역시 국수가 ‘봉제사접빈객’의 주요 도구였기 때문이다. 여전히 안동에서는 “국수 없는 제사 없다”고 말한다.

대구 시내 시장통에는 ‘합천할매집’이 있고, 칠곡의 국숫집에서는 안동식 건진국시, 제물국시를 내놓는다. 국수 중에도 칼국숫집이 유난히 많다. 경북 만의 국수도 있다. 반드시 콩가루를 ‘쪼매’ 넣는다. 경주 ‘웃장’의 칼국수 미는 사람이나 안동의 건진국시, 제물국시 맛집들도 ‘콩가루 쪼매’에 대해서는 각각 말이 다르다. 수십 번을 물어봐도 아무도 “몇 퍼센트 넣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쪼매’다.

‘쪼매’는 한식의 특질이다. 오랜 경험과 연습으로만 다다를 수 있는 경지다. 레시피대로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쪼매’는 딥러닝(Deep Running)을 거친 AI(Artificial Intelligence)도 따르기 힘들다. 그날의 온도, 습도, 불의 강도와 가족들의 시시각각 바뀌는 식성까지 헤아려야 한다. 우리의 ‘엄마’ ‘할매’들은 이런 어려운, ‘콩가루 쪼매 넣은 칼국수’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손쉽게 만들었다. “콩가루를 얼마나 넣느냐?”는 질문에 대한 명답이 있다. “여름철에는 ‘쪼매’ 더 넣고, 겨울에는 ‘쪼매’ 덜 넣니더”.

구룡포, 장기 일대에도 재미있는 국수가 있다. ‘깔때기’ 혹은 ‘깔때기 국수’다. 미역국에 밀가루 음식을 넣어 먹는다. 수제비를 넣어서 먹었다는 이도 있고, 같은 지역임에도 새알심을 넣었다는 이도 있다. 요즘은 굵직한 칼국수 형태의 밀가루를 넣는다. 바닷가의 흔한 미역과 밀가루가 만난 경우다. 지금도 경북에서는 “난 하루 세끼 국수를 먹을 수 있다”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국수는 일상적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국수, 국수 맛을 기억하고 있다. ‘멸치 쪼매 부숴 넣고, 콩가루 쪼매 넣어서 해 먹었던 칼국수’는 경북 출신들의 ‘소울푸드’다.

 

건진국시와 제물국시는 제사와 손님맞이의 필수 품이었다. 안동 ‘골목안손국시’.
건진국시와 제물국시는 제사와 손님맞이의 필수 품이었다. 안동 ‘골목안손국시’.

경북의 모든 음식이 봉제사접빈객의 음식은 아니다. 추어탕은 서민의 일상식이다. 추어탕은 중부식과 남부식으로 나눌 수 있다.

중부식은 한양, 서울 방식이다. 국물을 별도로 마련한다. 국물은 소 내장이나 부속물을 우린 것이다. 고명, 육수 모두 화려하다. 고춧가루나 고추장을 사용한다. 붉고 맵다.

경상도식 추어탕은 단순, 담백하다. 미꾸라지를 삶은 후, 곱게 간다. 곱게 간 미꾸라지 살로 추어탕을 끓인다. 된장 혹은 간장을 육수 대신 사용한다. 담백하다. 채소도 우거지, 시래기 등이다. 주로 배추 우거지를 곱게 쓴다. 여기에 산초가루를 더한다. 그뿐이다. 맑고 담백하다. 농경 지역 형태다. 청도 일대의 추어탕은 메기를 더했다. 추어탕에 메기를 넣는 이유는 간단하다. 맛이다. 상주, 예천, 문경 등에는 논, 개울에서 직접 미꾸라지를 잡아서 추어탕, 추어전골을 내놓는 집들도 있다.

‘갱시기’는 퍽 재미있다. 갱식(羹食), 혹은 갱식(更食)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앞은 ‘국물 음식’이고, 뒤는 ‘다시 끓여 먹는다’는 뜻이다.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시래기였다”고 떠들었다. 시래기와 갱시기. 나머지 2할은 갱시기였다. 소설가 성석제도 갱시기에 대해서 글을 썼다. 성석제는 고향이 상주 은척이다. ‘상업화’에는 실패했지만, 갱시기는 한식의 특질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한식은 ‘탕반(湯飯)음식’이다. 갱시기도 간편한 국물 음식이다. 멸치, 김칫국물에 식은 밥을 더한다. 콩나물, 두부 등을 넣어도 좋다. 남은 음식은 다시 끓여도 된다. 인스턴트 음식이다.

4 갱시기. 김천 ‘기차길옆오막살이’.
갱시기. 김천 ‘기차길옆오막살이’.

한식의 특질은 삭힘이다. 유럽인들이 우유, 고기를 삭힌 유장(乳醬)을 자랑하지만, 좁고 얕다. 한식은 콩 등을 삭힌 두장(豆醬)과 생선을 삭힌 어장(魚醬)을 동시에 사용한다. 겨울이면 포항을 비롯, 동해안 전 지역에서는 ‘밥식해(食醢)’를 먹는다. 가자미, 명태, 횟대, 오징어, 꼴뚜기 등 생선도 가리지 않는다. 액젓 젓갈과 물기 없는 젓갈까지, 다양하다.

갱시기의 주재료는 김치다. 그중에서도 김장김치다. 양력 3월이면, 김장김치가 푹 익어 곰삭은 쿰쿰한 맛을 낸다. 갱시기는 삭힌 음식을 조리한 것이다. 갱시기는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다. ‘검이불루(儉而不陋)’의 음식이다.

한식은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다”. 경북 음식은 법도에 맞는 음식이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다. /황광해 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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