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2019년을 작별하는 마지막 날이다.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가 사생결단의 정쟁을 하다보니 벌써 한 해의 끝에 섰다. 통합과 협치를 약속했던 대통령은 어디로 갔는지 정치판은 쌈박질 뉴스뿐이다. 돌아보면 온 나라가 ‘내편 네편’으로 갈라져 원수처럼 싸운 적이 있었던가 싶다.

조국 파문, 선거법 개정, 공수처 설치,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등이 제기될 때마다 정치권은 입에 담기 힘든 진흙탕싸움을 벌였다. 정부 내에서도 청와대와 검찰은 서로 정의를 강변하고 대립하면서 국정불안을 증폭시켰다. 정치권의 갈등은 국민에게 비화되고 진영싸움으로 확산됨으로써 온 나라가 두 동강 났다. 양 진영에서 동원한 ‘광장정치가 의회정치를 겁박’하는가 하면, 정치적 성향이 다른 언론과 유튜브 방송들도 각자의 진영논리를 대변하고 있다. 심각한 이념적 분열과 내로남불의 정치로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이다.

이러한 참담한 현실을 교수들은 ‘공명지조(共命之鳥)’에 비유하였다. 최근 교수신문이 교수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선정한 올 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이다. 하나의 몸통에 두 개의 머리가 달린 이 새는 공동운명체이다. 두 마음이 서로 질투하던 어느 날, 한 머리가 다른 머리에게 복수하기 위해 독 있는 과일을 먹었고, 결국 독이 온 몸에 퍼져 둘 다 죽고 만다는 불교경전의 이야기다. 공명지조의 교훈은 ‘상생(相生)’, 즉 “너 죽고 나 살자”가 아니라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윈윈의 길을 찾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길은 어디에 있는가?

상생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민의 올바른 정치의식이 중요하다. 정치권은 민주주의의 상생정신, 즉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가 아니라 ‘조금 더 많거나 작게(more or less)’라는 타협정신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나는 천사, 당신은 악마’라는 독선과 편견을 버리고 상대를 존중하면서 소통과 대화를 해야 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권력을 가진 자, 즉 집권여당이 먼저 야당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며, 서로가 ‘다른 의견’을 ‘틀린 의견’으로 매도하지 않고 그 격차를 좁혀나가야 한다. 또한 정치권의 상생정치를 위해서는 ‘국민이 공정한 심판관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유권자가 권력게임의 어느 한 편에 가담하여 적대정치를 부추기는 한 상생의 정치는 뿌리내리기 어렵다. 물론 국민도 개인적 정치성향이 다를 수는 있지만, 정치게임에서 심판관 역할을 해야 할 유권자가 정치인처럼 플레이어(player)가 되어서는 안 된다.

총선이 예정된 새해에는 정치권의 권력투쟁이 더욱 격화될 우려가 있다. 출마하는 후보들은 왜,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려는지, 정치인으로서 품격은 갖추었는지를 자신에게 물어보기 바란다. 또한 국민은 민주주의 원칙에 투철함으로써 상생정치의 적임자를 찾아내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새해에는 한국정치가 ‘상극의 정치’로부터 ‘상생의 정치’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