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한 손맛, 겨울 동해안 낚시 기행 5 - 겨울 바다에 핀 동백꽃, 선상 열기 낚시

뜻밖의 수확, 말쥐치 두 마리가 한꺼번에 잡혔다.
뜻밖의 수확, 말쥐치 두 마리가 한꺼번에 잡혔다.

겨울 바다가 풍성한 낚시터가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어종, ‘겨울 바다의 불꽃’이라고 불리는 열기 덕분이다. 열기는 쏨뱅이과 양볼락과의 물고기로 정식 명칭은 ‘불볼락’이다. 전체적으로 불그스름한 빛깔을 띠기 때문에 불볼락이라는 학명이 붙은 것인데 어째서 ‘열기’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을까? 아마도 ‘불’이라는 단어의 기의 때문일 것이다. 아니다. 한겨울에도 낚시인들의 가슴을 달아오르게 하는 화끈한 물고기인 까닭인 지도 모른다.

 

바늘 여러 개 달린 낚시줄에 열기 잘 태우면
수면 아래서부터 ‘주렁주렁’ 열기꽃 피어올라
우연히 낚은 말쥐취는 그야말로 바다의 선물
차진 회로, 담백한 구이로… “겨울의 맛이다”

열기 낚시는 오직 겨울에만 한다. 수직으로 줄을 내리는 외줄낚시인 점에서 우럭 어초침선 낚시, 농어나 민어 외수질 낚시와 방법이 유사하나 결정적인 차이는 바늘의 개수에 있다. 열기 낚시는 무거운 추에다가 ‘카드 채비’라고 하는 줄줄이 바늘을 달아 사용한다. 보통 여섯 개에서 열 개 정도를 쓰는데, 베테랑 조사들은 열다섯 개, 스무 개짜리 채비를 쓴다. 바늘에는 크릴새우나 오징어를 끼운다. 간혹 생미끼와 함께 루어의 일종인 ‘웜’을 달아서 낚시하기도 한다.

열기가 머무는 곳이 주로 수심 30m 이상의 깊은 바다이기 때문에 80호(300g)짜리 봉돌을 사용하며, 채비 내리고 올리기와 수심층 파악에 용이한 전동릴이 유리하다. 바늘 열 개에 열기가 모두 걸려 줄줄이 사탕처럼 올라올 때, 낚시꾼들은 “열기꽃이 피었다”고 외친다. 열기꽃은 겨울 바다의 동백인 셈이다.

 

열기 구이. 프라이팬이나 숯불 화로 어디에 구워도 맛있다.
열기 구이. 프라이팬이나 숯불 화로 어디에 구워도 맛있다.

12월 말, 찬바람이 부는 경주 감포의 한 항구에서 일행과 함께 새벽 낚싯배에 올랐다. 배에는 나처럼 열기꽃을 잔뜩 따려는 낚시꾼들이 대여섯 명 더 있었다. 추위를 피해 선실에 도란도란 모여앉아 누군가는 졸고 또 누군가는 열기 낚시 무용담을 늘어놓는 사이 포인트에 도착했다. 열기도 우럭처럼 어초 주변에 모인다. 선장은 인공 어초와 자연초를 오가면서 열기를 공략할 것이라고 한다.

수심 50m권으로 첫 채비를 내렸다. 채비가 바닥에 닿은 후 2~3m 정도 채비를 띄워야 바닥 걸림을 피할 수 있다. 그러다가 입질이 없다 싶으면 채비를 조금씩 내리면 된다. 방법은 어렵지 않지만 ‘세기(細技)’에서 베테랑과 초보의 조과 차이가 확연해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줄 관리다. 바늘 여러 개가 달린 채비를 사용하다보니 이리 엉키고 저리 엉키는 일이 다반사다.

엉킨 바늘을 풀고 채비를 다시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옆 낚시꾼은 아이스박스를 가득 채운다. 줄 관리를 잘 못하면 내 낚시도 망치지만 옆 사람과 줄이 엉켜 다른 사람의 낚시에도 피해를 입힌다. 열기 낚시는 첫째도 줄 관리, 둘째도 줄 관리다. 선장이 내리라고 할 때 채비를 내리고, 올리라고 할 때 올리는 ‘명령 수행 능력’ 또한 요구된다.

배가 어초 위를 지나는 순간 뱃머리 쪽에 자리 잡은 꾼의 낚싯대가 초릿대를 까딱거리기 시작한다. 입질이 온 것이다. 이제 앞에서부터 차례로 다른 꾼들에게도 입질이 올 것이다. 열기 낚시의 성패는 “열기를 태우느냐 태우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입질이 온다고 해서 바로 감아올리면 열 개의 바늘 중에 한 마리만 걸려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배에서 바로 썰어 먹는 열기회.
배에서 바로 썰어 먹는 열기회.

열기는 호기심이 왕성한 물고기라서 한 녀석이 바늘을 물고 있는 걸 보면 나머지 무리들도 따라 나와 바늘을 무는 습성이 있다. 그러므로 낚싯대가 아래로 쿡쿡 처박을 때 릴을 한 바퀴 정도만 감아 들이고, 또 입질이 올 때 한 바퀴, 또 한 바퀴, 이렇게 하면 낚싯줄의 장력이 팽팽하게 유지되면서 먼저 바늘을 물고 있던 열기들이 빠져나가지 않고 주렁주렁 매달려 다른 열기들을 끊임없이 불러 모으게 된다. 낚싯줄에다가 충분히 “열기를 태웠다”고 판단되면 그때 전동릴을 감아올린다. 검푸른 겨울 바다, 수면 아래서 붉은 꽃잎들이 피어오르는 순간 누군가 외친다. “열기꽃이 피었다!”

줄줄이 피어 올라오는 겨울 바다의 동백꽃을 바라보며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얼른 바늘에서 열기를 떼어내고 빈 바늘에 미끼를 달아 다시 채비를 내려야 한다. 열기 낚시는 손이 굉장히 바쁜 낚시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조과를 장담할 수가 없다. 내리고 올리고 떼고 달고 풀고 하는 일련의 과제들을 그때 그때 착실하게 수행해야만 쿨러를 가득 채울 수 있다. 나는 열기를 가득 태우지는 못해도 서너 마리씩 꾸준하게 잡아 올리며 어느새 쿨러를 꽤 채워 나가고 있었다.

동해 남부권에서 열기 낚시를 하다보면 뜻밖의 손님 고기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가장 흔하게 만나는 녀석은 쏨뱅이다. 얼마나 맛있으면 ‘매운탕의 황제’라고 불리는 귀한 고기다. 열기 네댓 마리가 한꺼번에 올라올 때 쏨뱅이도 한두 마리 함께 올라오는 경우가 잦다. 간혹 우럭이나 볼락이 걸려 올라오기도 한다. 다 맛있는 생선들이다. 감성돔 낚시꾼들에게 홀대받는 황놀래기가 잡힐 때도 있다. 이 황놀래기는 칼집을 내 구워 먹으면 옥돔 못지않게 맛이 뛰어나다. 다양한 손님 고기와의 만남은 생미끼 낚시가 지닌 매력이다.

그런데 이날 낚시에서는 그야말로 귀빈과 조우할 수 있었다. 입질의 형태가 열기와는 다른 데다가 초릿대를 우악스럽게 잡아당기는 힘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물 위로 꺼내 보니 30㎝가 조금 안 되는 돌돔이었다. 돌돔이 어떤 물고기인가? ‘바다의 황태자’라고 불리는 최고의 낚시 대상어이자 맛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횟감의 제왕이다. 비록 ‘뺀찌’(작은 돌돔을 칭하는 낚시꾼 방언)였지만, 뜻밖의 횡재에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쿨러를 가득 채운 열기꽃. 낚시꾼들은 ‘만쿨 조황’이라고 부른다.
쿨러를 가득 채운 열기꽃. 낚시꾼들은 ‘만쿨 조황’이라고 부른다.

함께 낚시한 일행은 귀한 말쥐치를 한 번에 두 마리나 낚아 올리는 쾌거를 거두었다. 말쥐치는 제주권 찌낚시나 외줄낚시, 루어 낚시의 일종인 러버지깅에서나 가끔씩 볼 수 있는 고기인데, 동해권에서 30㎝급의 대물 쥐치 두 마리가 낚싯대 한 대에 걸려 올라오는 일은 정말 보기 드물다. 쿨러를 가득 채운 열기와 함께 돌돔과 말쥐치까지 획득한 우리는 쾌재를 부르며 입항했다.

중국의 대문호인 루쉰의 산문에 ‘조화석습(朝華夕拾)’이라는 말이 있는데, 직역하면 “아침 꽃을 저녁에 줍는다”는 의미다. 아침에 바다에 가득 핀 열기꽃을 따 담았는데, 진정한 꽃 줍기는 저녁에 시작된다. 열기 요리의 향연이 펼쳐진 것이다. 열기는 어떻게 요리해도 다 맛있는 생선이다. 회를 치면 특유의 차친 식감과 단맛이 일품이고, 구이는 그 어떤 생선도 감히 비길 수 없는 고소한 맛이다. 매운탕을 끓이면 얼큰하면서 풍미 깊은 국물과 함께 촉촉하고 담백한 생선살을 맛볼 수 있다.

일행들과 함께 아침 꽃을 저녁에 주우며, 아니 열기꽃을 저녁에 먹으며 불콰하게 취하는 동안 밤이 밀물로 밀려왔다. 동짓날이 막 지난 겨울밤은 왠지 짧아진 느낌, 아침이 어느새 머리맡에 와 있었다. 까치 소리에 반갑게 깨어 펜션 마당을 산책하는데, 담벼락 위로 고개를 내민 동백나무에 어제의 열기꽃보다는 작고 수줍게 동백꽃 몇 송이가 눈망울을 밝히고 있었다. 낚시꾼은 한 계절을 먼저 사는 사람들이다. 차가운 겨울바다에서 봄을 예감하며, 쿨러를 가득 채운 조과에 벌써 마음에는 동백, 홍매화,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 벚꽃, 라일락이 만발했다.

길고 지루한 겨울을 즐겁게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낚시를 하는 것이다. 겨울 바다가 쏘아 올리는 아침 태양을 바라볼 때, 태양의 열기가 눈시울과 가슴으로 옮겨 와 ‘살아있다’는 자각에 저절로 뭉클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열기’를 품에 안고 ‘열기’를 줄줄이 낚아 올리면, 낚싯줄에 매달려 나부끼는 열기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 되어 마음의 근심과 슬픔, 권태를 모두 닦아줄 것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열기꽃 필 무렵’,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저 붉고 아름다운 열기꽃을 따러 가자. <끝>

/이병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