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애 리

꽃 아니라고 기죽지 마라

눅눅한 습지를 지탱해온 그늘과

불임의 시간들 뭉쳐 촘촘히도 피었구나

너를 다녀간 세상의 모든 음지가

다 독 되는 게 아니라고 믿는다

만지기만 해도 세균 번지고 마는 것은

저 불온한 사람의 손길이지

이어지는 혐의들

그리운 체온 감지하며 늑골 아래서

저토록 푸르게 꽃이 될 수 있으니

내 스러져 썩은 후에도 다시

이녁의 한 줌 허리에 깐깐한 꽃으로

피어날 수 있을까

비록 이파리도 꽃대도 없이 눅눅한 습기에 기생하며 평평하고 검푸른 색깔의 꽃을 피우는 곰팡이를 제재로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지금도 외지고 소외되고 어두운 곳에서 곰팡이꽃을 피워내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시인의 따스한 현실 인식의 눈빛을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