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영 공무원

예년과 다른 새해를 맞이하려는 의욕이 충만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패가 불 보듯 뻔한 탓에 새해 각오 자체를 아예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나도 그저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지난 2018년 말, 실로 오랜만에 ‘새해 결심’이라는 것을 써 보았다. 리스트에는 일회성도 있고 꾸준히 습관을 만들어 삶 자체를 변화시키려는 중대 결심도 있었다. 이대로 실천하면 삶은 충만해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우려대로 연초 다짐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일상의 반복만 거듭하며 또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그때 작성한 새해 결심을 펴보지도 않다가 1년이 끝나가는 시점에 열어본다. 무려 스물다섯 가지나 적혀 있다. 한 줄 한 줄마다 포부가 엿보인다.

첫 번째 목표는 서울 예술의 전당에 올라가 오케스트라 공연 관람하기로 적혀 있다. 못 갔다. 대신 2월에 롯데 콘서트홀에서 열린 빈 첼로 앙상블 공연을 보고 왔다. 공연, 콘서트, 전시회 같은 유희와는 담을 쌓고 살아왔기에 이런 활동은 내 정신적 제약을 뛰어넘는 행동이다. 보통 사람은 고민 없이 실행하는 이런 간단한 일도 내게는 거창한 이유가 달린다. 어쨌거나 첫 번째 목표는 달성으로 친다. 두 번째 목록에는 문장 중간에 ‘꾸준히’라는 낱말이 있다. 신문에서 유용한 자료를 골라 스크랩을 한단다. 꾸준히. 이미 내 습성을 간파하고 나름 굳은 결심으로 꾹꾹 눌러쓴 결심이었을 거다. 몇 번 실천했는데 과연 이를 목표 달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세 번째부터는 차마 적지도 못하겠다.

새해가 되면 빠지지 않는 외국어 공부에 관한 것도 몇 개나 적혀 있다. 이건 몇 번 했고, 저건 절반쯤 했고, 아예 손 안 댄 것도 있다. 목록을 넘기다 보니 마지막에 파주 출판단지에서 북캉스 체험하기가 있다. 이 항목에선 슬며시 웃음이 났다. 참여 중인 생각학교 여름 컨퍼런스가 파주 출판단지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당일치기 일정이었지만 나는 지혜의 숲에서 따로 하루를 더 묵으며 책이 뿜어내는 지향(紙香)을 맘껏 쐬었다. 그 행사 아니었으면 북캉스도 틀림없이 미뤘을 게 뻔하다. 습관을 형성하기 위한 항목은 하나를 빼고 대부분 미완성이라 결국 2020년 새해 결심으로 옮길 판이다. ‘작심삼일’로 씁쓸하게 마무리한 수많은 목록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백발의 미국 안무가 트와일라 사프(Twyla Tharp)는 새벽 5시 30분이면 침대에서 일어나 바로 택시를 불러 헬스장으로 간다. 눈뜨자마자 택시를 타는 행동 사이에 불필요한 동작은 없다. 이 작은 습관은 나이 70이 넘기까지 현역 무용가로 활동할 수 있는 원천이었다. 이 일화는 리추얼(ritual) 즉 의식(儀式)이 단단한 습관을 구축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사례로 종종 인용한다. 그녀는 기상과 운동 사이에 ‘택시 타기’라는 의식을 연결 고리로 넣었다.

내가 올 한 해 습관 형성에 성공한 그 하나는 새벽 4시 기상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위해 새벽 시간을 선택했다. 알람을 끄고 다시 곯아떨어지거나 겨우 일어나 졸다가 우왕좌왕 출근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포기하고 다시 시도하기를 무수히 반복하며 수면의 질만 나빠지던 차에 나만의 리추얼을 찾았다. ‘샤워하기’였다. 침대에서 알람을 끄고 일어나서 곧장 욕실로 간다. 잡생각은 금물이다. 10분 가량 샤워를 마치면 책상에 앉아 조는 일 없이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기상과 독서 사이에 샤워라는 고리를 찾아낸 것이다. 새해 결심은 대부분 이렇게 작은 고리가 없어 습관으로 정착하지 못했다는 점을 발견했다. 유레카!

2020년 하얀 쥐의 해를 바라보면서 내가 도달하고 싶은 곳의 모습을 리스트로 정리한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나는 무엇을 연결 고리 삼을지도 생각한다. 이루지 못한 것들, 하다가 만 것들을 다시 손질해서 내년엔 쥐처럼 부지런하게 움직일 수 있길 기원하며 새 다이어리에 조심스럽게 옮겨 적는다. 연초, 가슴을 뛰게 했던 수많은 계획이 지금 초라하게 구겨져 있다면 실행을 어렵게 했던 요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분명 둘 사이를 연결할 수 있는 고리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자! 겁내지 말고 새해 결심을 작성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