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라 연
누구 본 적 있으세요?
세상을 뚫고 나아가
한 마리 새 되어 날지 못했을 때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새 되지 못한 설움의 뼈들이 얼기설기
가시가 되거나 철사줄이 되었을 때
가시와 철사줄이 사이좋게
내 몸의 뼈와 살이 되어 주었을 때
한때의 초록빛 행운들이
가시를 뚫고 철사줄을 뚫고
나비 되어 날아오르던
그 순간들을 누구 본 적 있으세요?
나비들이 두 뿔을 지나 긴 목을 타고
물결이 흐르듯 허리부터 발끝까지
사슴꽃장미나무의 새순으로
제 목숨을 바꾸어 매달던
그 순간을 누구 본 적이 있으세요?
슬픔으로 길어진 목
슬픔의 길을 걷기 위해 한없이 길어진 다리
한 그루 사슴꽃장미나무가 되어 뿌리를 내렸을 때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뿔부터 발끝까지 온통
분홍빛 장미꽃 송이들을 아프게 아프게 피워냈을 때
사슴이면서 사슴으로 살 수 없어
사슴꽃장미가 된 설움 하나를
누구 본 적 있으세요?
비상(飛翔)을 꿈꾸지만 끝내 날아오르지 못하고 좌절하고 마는 것은 운명적 한계일지 모른다. 그러나 사슴꽃장미나무는 좌절하고 포기하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 새순을 내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한다고 말하는 시인의 시선에서 희망을 본다. 좌절과 절망에 머무르지 말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