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은 원래 가톨릭교회의 성인 추대 심사에서 유래된 용어로서 논의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반대 입장을 취하면서 ‘선의(善意)의 비판자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악마의 대변인은 조직 내부에 형성된 기류에 따라 자신의 생각과 관계없이 조직 의견에 동조하는 ‘집단사고(groupthink)’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역할을 한다. 반대 의견을 제시하여 토론을 활성화시킴으로써 보다 나은 대안을 찾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독재체제의 차이점은 통치자의 생각과 다른 의견이 허용되는가의 여부이다. 북한에서는 김정은 위원장과 다른 의견은 ‘반동분자’라는 낙인이 찍혀 죽음을 각오해야하지만,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다른 생각을 얼마든지 피력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에서는 다른 생각이 오히려 더 나은 대안이나 새로운 창조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권장되기까지 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애플(Apple)의 광고,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는 스티브 잡스(S. Jobs)가 인습적 사고에 갇힌 보통사람들에게 ‘악마의 대변인’이었음을 말해준다. 애플의 성공이 무엇에 토대를 두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시사점이다. 또한 1962년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은 당시 소련의 쿠바 미사일 배치에 대처하기 위하여 동생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에게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맡도록 하였는데, 강경파들이 주장했던 당초의 ‘공습전략’은 논의과정에서 핵전쟁으로 확산될 우려가 제기되어 온건한 ‘해안봉쇄전략’으로 수정됨으로써 평화적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우리 역사에도 ‘악마의 대변인’의 가치를 잘 인식한 성군(聖君)이 있었다. 세종은 어전회의(御前會議)인 경연(經筵)에서 지나칠 정도로 계속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고약해(高若海)’를 대사헌(현재의 감사원장)에 중용하여 ‘악마의 대변인’으로 삼았다. 절대왕조시대에도 목숨을 걸고 ‘왕과 시비를 다투는 대간(臺諫)’들의 직언이 있었기 때문에 왕의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혜로운 정치지도자는 자신의 독선을 경계하고 집단사고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악마의 대변인’을 두었다. 물론 그의 의견을 수용하느냐의 여부는 전적으로 통치자의 몫이다. 우리 헌정사가 보여주듯이 역대 대통령들의 비극은 권력에 눈먼 예스맨(yes man)들에게 둘러싸여 충성스런 비판과 고언(苦言)을 단지 ‘고약한 의견’으로 무시해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처럼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첨예화된 상황에서는 청와대 참모들의 이념적 동질성이 강하기 때문에 ‘집단사고의 덫’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도 ‘외눈박이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악마의 대변인’을 곁에 두고 비판적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제왕적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소신은 강하나 포용력이 없다면 그에게 참된 조언을 하는 충신들은 점점 사라진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