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진 영덕군수
이희진 영덕군수

돌아보면 어떤 기대와 흥분으로 기해년 벽두를 맞았던 것 같다. 민선7기를 맞아 2천만 관광시대를 실현하려면 첫 단추를 어떻게 꿰어야 할지 고민이 컸다. 지역 고유의 자원을 활용한 문화관광 콘텐츠가 관건이라 여겼기에 영덕의 면면을 찬찬히 톺아봤다. 하나의 그림이 그려졌다. 독립운동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영해 3·18만세운동과 그 유산을 대구의 김광석거리처럼 특화시킨다면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 생각했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라 정부도 100주년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우선 호국의 고장으로서 영덕의 정체성을 새롭게 다지는 게 중요했다. 한국 근대사의 암흑기였던 일제강점기는 민족 불굴의 투지를 증명한 긍정의 역사로 일깨워져야 했다. 영덕에서는 항일시위의 영웅들을 자랑스러운 역사의 주체로 재정립하는 작업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후손들은 역사적 긍지를 다시금 품게 될 것이었다.

100주년 기념 3·18독립만세문화제를 준비하면서 만세운동을 처음으로 모의했던 지품면 낙평리에 발상지 기념비를 세우고 영해 3·18의거탑에는 대형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해 ‘독립의 횃불, 전국 릴레이’행사를 열었다. 문화제에서 지역주민들은 플래시몹 공연에 대거 참여하며 대동단결의 축제를 만들고 횃불행진을 하며 선대의 숭고한 희생을 기렸다. 이런 노력들이 높게 평가받아 ‘제9회 대한민국 의병의 날’행사도 신돌석 평민의병장 유적지에서 개최할 수 있었다. 축산면의 작은 유적지에서 1천명이 넘는 인파가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을 외쳤고 돌아가는 군민의 손엔 영덕 의병의 역사를 새로 집대성한 책자가 들려있었다.

군민의 역사적 자부심을 북돋우는 작업과 동시에 추진한 사업이 문화재청의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활성화공모사업에 영해장터거리를 신청하는 것이었다. 근대역사문화공간은 근대 시기에 형성된 거리, 마을경관 등 역사문화자원이 집적된 지역을 의미한다. 문화재청에서 그동안 개별 건축물 등 점(點) 단위로만 지정했던 등록문화재를 선(線)과 면(面) 단위로 확장해 근대문화유산을 입체적으로 보존·활용하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현 정부의 국정과제로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추진되면서 활성화됐다. 지난 11월 영덕과 익산 두 곳만이 선정됐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11개의 역사문화도시가 자웅을 겨룬 심사에서 영덕이 두각을 나타낸 이유는 영해장터거리 주민의 역사의식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선 보존하고 활용할 가치가 있는 건축물을 보유한 주민들의 동의가 필수다. 이 문턱을 넘지 못한 시군이 많았는데, 우리 만세운동의 후예들은 기꺼이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적극 동참했다. 매년 만세운동을 재현하며 숭고한 희생을 기려온 후손들이어서 가능했던, 선대를 향한 헌정의 예(禮)라 하겠다. 실로 감사한 일이다.

현재 영해장터거리의 건물 10개소가 국가지정문화재로 등록됐다. 문화재들은 근대가옥 갤러리, 의상대여점, 박물관, 주막체험 양조장, 사진관, 인력거 정류소,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활용되며 이와 연계해 다양한 먹거리와 문화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근대역사문화공간이 조성되면 매년 개최하는 3·18독립만세문화제의 장이 더욱 다양해지고 콘텐츠도 풍부해질 것이다. 인근의 전통시장인 영해만세시장도 더욱 활력이 넘칠 것이다. 영해장터거리는 영덕군을 상징하는 역사문화공간이 되리라 믿는다. 영해장터거리는 지난 11월 정부공모사업에 선정된 축산 블루시티 조성사업과 현재 입소문을 타고 방문객이 늘고 있는 창수면 인문힐링센터 여명과 함께 영덕군 북부의 관광거점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매년 한국관광의 별에 선정돼 겨울과 봄철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남부의 강구대게거리와 조응하는, 균형개발의 효과도 기대된다. 영덕대게와 복숭아, 송이, 해수욕장은 모두 특정 계절의 영향 아래 있지만 문화재를 보존하고 활용하는 근대역사문화공간은 사계절 관광명소로서, 지역경제에 한 몫을 제대로 담당할 것이다.

문화관광과의 근대역사문화공간사업 사업담당자는 요즘 밥 먹듯이 야근을 한다. 원래의 업무에 영해장터거리 활성화사업이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민선6기 중반부터 열악한 군 재정의 대안으로 정부공모사업을 직원들에게 많이 주문했다. 그동안 역량이 늘고 선정되는 사업도 많아졌는데 그에 비례해 직원들 피로감도 커졌다. 올해는 유별나게 태풍도 많아 비상근무도 잦았다. 걱정이다. 12월에 특별휴가를 챙겨봤지만 충분할지 모르겠다. 문화재 등록에 기꺼이 동참한 영해장터거리의 주민들, 사업추진과 잦은 비상근무에 헌신한 공무원들 모두가 3·18만세운동의 자랑스러운 후예들이다. 바로 이들이 영덕의 2천만 관광시대의 여명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