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은 공무원

나는 역사책 읽기를 좋아한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원인과 결과가 늘 궁금하기 때문이다. 왜 문명 발전이 늦었던 서양이 20세기에는 동양 대부분을 지배했을까? 왜 문명사에서 가장 앞선 비옥한 초승달 지역인 아랍 지역은 이후 한 번도 문명의 주인공 노릇을 못 했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이 터지는 중동 지역의 일상생활은 어떨까? 생활 전반이 불편해 보이는 히말라야 자락의 부탄이라는 최빈국의 행복지수가 왜 세계에서 가장 높을까? 그들이 행복하다면 왜 행복한가? 이런 것들이 늘 궁금하다.

역사, 책을 보면 인류는 자연환경을 지혜를 모아 극복하면서 문명을 발전시켰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문명은 작은 지혜가 모여 쌓인 결과물이다. 역사적 사건은 한 가지 단순한 원인에 의해 벌어지지 않는다. 여러 정황과 사건이 쌓이다가 마지막에 어떤 결정적인 변수 하나가 방아쇠를 당기면 비로소 거대한 역사적 사건으로 세상을 바꾼다. 이것을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라고 한다. 작은 변화들이 쌓이고 쌓여 아주 작은 변화 하나만 일어나면 거대한 물결이 일어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보스니아의 라틴 다리에서 암살당한 사건으로 벌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물밑에는 다양한 사건들이 티핑포인트에 근접해 있었다. 늦게 식민지 경쟁에 합류한 독일, 보스니아를 점령해 지중해를 장악하고 아시아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확보하고자 하는 오스트리아, 부동의 항구를 얻고 싶은 러시아, 대(大)세르비아 민족국가를 만들고 싶었던 세르비아. 발칸반도에 전운이 무르익을 대로 익었을 때, 세르비아 비밀결사체 흑수단 청년이 얼떨결에 죽인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죽음으로, 발칸반도와 이해관계가 있던 모든 나라와 이를 저지하기 위한 강대국이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동시에 전쟁에 뛰어들었다.

진나라가 멸망한 후 다시 분열한 중국을 통일한 한나라의 유방과 그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초나라의 항우가 겪은 성공과 실패는 그 원인을 찾기 어렵지 않다. 완벽한 능력을 갖췄지만 백성보다 자신을 더 사랑했던 항우는 다른 사람의 생각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별다른 기술 없이 어쩌다 나라를 세운 느낌의 유방은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경청의 지혜가 있었다. 이 작은 차이는 두 사람의 운명, 두 나라의 운명, 중국이라는 문명의 운명을 바꾸었다.

25년을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인정받는 직원의 비결에 대해 그 공통점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진정성 있는 성실한 업무를 매일 수행해 조금씩 신뢰를 쌓고 성실성을 만들어 낸다. 결국 어떤 일이든 믿고 맡기는 선수로 인정받는다. 일단 인정을 받으면, 다음 일은 쉽게 풀릴 수 있다. 호감을 주는 직원은 누구든 도와주고 싶어 한다. 재테크에서 종잣돈과 비슷한 역할이다.

올여름 농촌 여성을 대상으로 도 단위 경진대회를 목표로 부채춤 교육을 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30명으로 시작했으나 결국 15명이 남았다. 그 15명이 무대에서 화려하게 부채춤을 추고, 대상을 받았을 때 미리 포기한 15명은 크게 후회했다.

부채춤을 발표 과제로 결정하고 연습을 시작했을 때, 이들은 부채조차 펼 수 없는 왕초보였다. 부작은 원, 큰 원, 물결 모양 등 흐름이 변할 때마다 위치를 암기해야 했고, 음악에 순서를 맞추는 일은 60세에 가까운 농촌의 여성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이들이 끝내 대상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교육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마다 바쁜 일이 있고, 동작이 어려워 힘들 때는 포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교육에 참석한 사람들이 무대에서 공연하고 상을 받는 인생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주차를 할 때 작은 변화가 큰 결과를 만든다는 이치를 느낀다. 주차 라인에 차를 넣기 위해서는 각도를 조금씩 꺾으면서 움직이면 꼭 맞게 들어간다. 핸들 각도를 많이 틀지 않아도 된다.

평범하고 작아 보이는 일상이 매일 쌓여 지금 우리 모습으로 나타났다. 조금씩 쌓인 것은 언젠가 결정적 순간을 맞이할 것이고 애벌레가 나비로 비상하듯 우리도 그런 날을 맞이할 것이다. 평범하고 작아 보이는 매일을 열심히 살아내야 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