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견 전 경북도 경제부지사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서거 8주기를 맞아 묘소가 있는 현충원을 다녀왔다. 함께 한 지인들과 고 박태준 회장과 있었던 추억을 나누기도 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지난 9일 별세한 샐러리맨의 신화, 김우중 회장으로 이어졌다. 70년대 한국 경제를 일으켰던 주역들의 그야말로 신화 같은 이야기는 꿈과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1968년 기공식과 함께 모랫바람 속에서 이루어낸 포스코의 기적이 있었다면 1977년 서울역 앞에 솟아오른 대우빌딩은 우리나라 수출 백억 불 달성의 상징과도 같았다.

수출 백억 불 시대를 넘어 6천억 불을 이야기하는 오늘날 그들이 새삼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우리의 국민소득은 3만 불을 넘어섰으며, 성급한 사람들은 30-50 클럽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꺼내기도 한다.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1970년대 국민소득 1천100달러 시대와 비교해 보면 30배 가까이 높아진 셈이다. 세계가 놀랄 정도로 엄청난 성장을 이룬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때가 더 살기 좋았다는 말을 한다.

포항의 경제가 침체되면 될수록 박태준 시대를 떠올리고, 청년 실업률이 높아질수록 김우중의 세계 경영이 회자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믿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1960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개도국이였다. 물론 1997년 김영삼 정부 시절 OECD에 가입하면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고 하지만 IMF를 겪으면서 우리 경제의 허약성을 깨닫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우리 경제의 맷집이 강해지고 세계 경제의 상황이 바뀌면서 2000년대는 그런대로 살기 좋은 나라, 행복한 국민이라는 생각을 하며 지냈다.

그러나 2007년 우리 국민들이 간절히 바라던 국민소득 2만 불 시대에 접어들면서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고소득에 이를수록 성장률 둔화는 정해진 수순이라고 하지만 우리 경제는 세계적인 경쟁과 견제의 높은 파고에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는 선진화되지 못한 정치 불안과 심화된 양극화와 이에 따른 계층 간의 갈등, 복지에 대한 욕구가 동반 분출하면서 경제는 더욱 침체되고 있다. 대책 없는 노동시간 단축, 성급한 최저임금제 도입은 집값 상승과 맞물려 가계부채 증가를 부추기고 있다. 정부에서는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큰 폭으로 올려 국민의 소득을 올려놓으면 서민의 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면 세수도 늘어나면서 전반적인 경제가 활성화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활성화가 아닌 불황의 늪으로 빠지고 말았다. 한마디로 판단의 잘못으로 정책의 실패를 가져온 것이다. 국민들의 삶만 더욱 피폐해진 꼴이 되고 말았다.

다시 70년대 경제의 주역들을 불러올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만은 아직 우리가 기억하고 있다. 정책 당국자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국민 모두가 다시 70년대의 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때의 그 희망 어린 몸짓과 정신으로 일어서야 다시 우리에게 희망이 돌아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