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호공원 속 커다란 조형물 반겨
‘새 출발’ 의미 가진 특별전 ‘제로’
1950년대 국제미술운동 재조명
전시해설로 관람객 이해도 높여

지난 12일 포항시립미술관을 방문한 관람객들이 오토 피네의 작품 ‘코로나 보레알리스’에 불이 들어온 모습을 감상하고 있다.
몸과 마음이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 왔다. 연말이라 일은 산더미 같고 휴식할 시간이 없으니 더 피곤하다.

언젠가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히고 어려움에 부딪힐 때는 미술관에 한 번 가보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고뇌를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그 해답을 얻고, 나름의 위안도 받을 수 있다는 답변과 함께. 일상에 지친 당신의 영혼과 감수성을 재충전하기 좋은 장소를 하나 추천한다.

포항시립미술관은 영일만과 포항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드넓은 환호공원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입구는 빨간색의 커다란 구가 관람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해당 작품은 ‘2016 타임캡슐 포항’이다. 역사적 사건과 지명 등 포항을 상징하는 220개의 키워드가 한데 어우러져 구를 이뤘다.

미술관 내부로 들어가면 안내데스크에서 이번 전시회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이번 전시는 1950년대 후반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태동한 국제미술운동의 주축이 됐던 독일 출신 미술가 3인방 하인츠 마크, 오토 피네, 권터 위커 등을 비롯해 주요 작가 15명의 대표작 48점이 전시돼 있다. 작품의 주제는 ‘제로’로 0, 출발, 새로이 출발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지하 1층 전시관은 먼저 대형튜브 작품이 관람객을 반기고 있다. 해당 작품은 오토 피네의 ‘피어나는 하얀 릴리’다. 튜브에 공기를 넣어서 크게 부풀렸다가 다시 공기를 빼 가라앉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을 통해 꽃의 피고 지는 모습을 나타냈다. 전시관 안은 퀸터 위커의 ‘바닥 조각 가득 찬-비어 있는’ 작품이 설치돼 있다. 날카로운 못들이 바닥에 촘촘하게 놓여 있다. 못과 중간이 텅 빈 테두리 조각이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이 됐다. 바로 옆에는 오토 피네의 ‘코로나 보레알리스’가 보인다. 420개의 백열전구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작품에서 불이 꺼졌다가 켜지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이는 빛의 움직임을 뜻한다. 모든 불빛이 켜지면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을 연상시킨다. 계단을 걸어 1층으로 올라가면 제로그룹 전후 시기의 전위 예술가들의 아카이브가 있다. 아카이브는 예술인들의 가치관 등을 설명해 준다.

바로 옆 방에는 퀸터 워커 ‘모래 갈이’라는 작품이 전시돼 있다. 둥그렇게 모아 둔 모래 위에 나무 막대가 시곗바늘처럼 계속 돌아가고 있다. 사막을 배경으로 한 시계처럼 오묘한 분위기가 풍겼다. 이 전시회의 가장 핵심은 오토 피네의 ‘라이트 룸’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방에 들어가 있으면, 갑자기 구멍을 통해서 빛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마련돼 있는 작은 벤치에 앉아 있으면 우주에 혼자 떠 있는 느낌이 든다.

이번 전시회에는 예술가들의 작품의 제목이 기재돼 있지만, 작가의 의도는 적혀 있지 않은 작품이 많았다. 예술적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에게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관람객이 스스로 작가의 의도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특별전 제로는 오는 1월 27일까지 만날 수 있다. 도슨트 투어(전시해설)를 신청하면 더욱 쉽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도슨트 운영시간은 주중 오전 11시와 오후 3시, 주말에는 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4시다. 포항시립미술관 운영시간은 여름철(4월∼10월) 매일 10시부터 7시까지, 겨울철(11월∼3월) 매일 10시∼오후 6시까지다. 매주 월요일은 휴무고, 관람료는 무료다.

/이시라기자 sira115@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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