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필자의 지인 중에, Y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구김살 없이 성격도 좋고 경우도 바르며 인물과 능력도 매우 뛰어나 어딜 가나 늘 인기가 있는, 타고난 호감형의 인물이다. 부유하나 돈 자랑은커녕, 오히려 가난한 이웃을 소리 소문 없이 도와주고, 뛰어난 능력자이나 항상 겸손하며, 남의 불행엔 진심 마음 아파하고 남의 행복엔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축하해주는 그런 위인이다. 그런데 그가 벌레 보듯 하는 이가 하나 있었으니, 그는 바로 속 좁기로 소문난 L이었다.

하루는, 왜 L이 그렇게 싫은가 물었더니, Y의 말인즉슨, L의 속 좁음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본인은 상대를 예로써 대하지 않는데, 상대방으로부터는 존경받으려 하는 모양새가 싫고,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골라서 남에게 시키니 그런 무례함이 싫으며, 특정인을 챙기려고 작정하면 애꿎은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해서라도 무리수를 두니, 그 민폐가 이만저만이 아니기에 싫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필자에게 포스트잇이 붙은 성경 한 권을 건네었다. 펼쳐 보니 그 곳은 다름 아닌,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마태복음 7장 12절, 바로 그리스도교의 핵심 윤리인 황금률(Golden rule) 부분이었다.

예수는 이 황금률을 율법서와 예언서에 나오는 모든 규칙들 중 가장 으뜸으로 여겼다. 사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한다는 것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이는 단순히 물 한 그릇 밥 한 그릇 대접한다는 차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을 대접한다’는 말에는 이미 내가 어떤 대접을 받을 사람인지가 정해졌다는 말이 내포되어 있다. 옛날 무학 대사가, 저를 ‘돼지 같다.’고 한 이성계를 향해, 오히려 부처 같다하면서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이,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이 보인다.’는 말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돼지만 보이는 당신은 돼지처럼 대접받으면 될 일이고, 부처를 보는 나는 부처같이 대접하라는 명쾌한 촌철살인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남을 대접한다’는 것은 곧 타자를 향한 베풂이자 나를 향한 베풂이기도 하다. <논어> 위령공 편에는, 자공이 공자에게 평생 실천할 수 있는 한 마디의 가르침을 요구하자 공자가 이렇게 말한 대목이 나온다.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자신이 원치 않으면 타인에게도 시키지 말라)’. 그렇다. 내가 대접받고 싶으면,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절대 시켜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러한 인간관계의 기본원칙을 망각한 채,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는 ‘기소불욕 시어인(己所不欲 施於人)’ 족속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다.

바야흐로, 한 해의 끝자락 12월이다. 이맘때면, 올 한 해를 찬찬히 돌아보기도 하고, 다가올 신년 계획도 세우기 마련이다. 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여러 가지 기억들, 추억들이 많겠지만, 그 틈 사이로, 스스로 황금률을 제대로 실천해 왔는지, 혹 ‘기소불욕 시어인’ 하지는 않았는지 모두가 스스로 한번쯤 성찰해 보는 시간을 살짝 넣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