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명 시인
조현명 시인

교육개혁을 바라보는 일선교사의 생각은 늘 주체가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소외감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정책과 시스템은 교육부라 이름하는 교육 관료주의로 이루어져 있다. 항상 그 시스템의 말단에 서있는 일선교사가 교육 개혁의 대상이며 개혁 실행의 당사자였기 때문에 개혁에서 소외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개혁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지지부진하다가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정책으로 전환되는 악순환을 경험한다. 일선교사는 그러므로 생각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관료주의 시스템이 단단하게 구축되어있다. 마치 검찰이 개혁되어야 한다고 촛불까지 켜들고 하지만 잘 안 되는 것과 같이 교육 관료주의 또한 만만치 않다.

전국단위의 연수회에서 교육부 행정 사무관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에 대한 질의 응답시간이었는데, 갑자기 “학교에서 고3의 교육과정을 제대로 편성 실행하고 있습니까? 전부 수능에 맞추어 왜곡 변경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해서 듣고 있던 교사들이 술렁거리기도 했다. 행정 사무관 한사람의 협박에 모든 학교와 선생님들이 죄인이 되어버린 현장이었다. 사실은 교육부가 만들고 해마다 땜질식으로 바꾸어놓은 입시제도에 의해 교육과정이 왜곡되고 있는데도 그 잘못을 일선 학교 교사들에게 전가하는 모습에서 나는 처음으로 교육 관료주의가 이런 것이구나 통감하게 됐다.

20년 시차로 우리사회가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동경대에 들어가기 위해 7수, 8수를 하던 경쟁과 사교육을 그대로 닮았고, 이후 유도리(여유)교육으로 공교육이 황폐화된 것도 닮았다.

현재 일본은 ‘국제 바칼로레아(IB)’를 공교육에 도입,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혁명적인 교육개혁을 실행하고 있다. 그것도 대구, 제주 교육청이 따라가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부도 시차를 두고 따라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것이 일본에는 문부과학성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닮은꼴의 교육부가 있기 때문이다. 관료주의는 두 나라가 뼈 속까지 닮았다.

교육개혁은 관료주의의 조직 하에서는 단언컨대 형식적으로만 이루어질 것이다. 실제적이려면 일선교사들의 공감을 얻어야하는데, 그것은 오랜 기간 동안 준비하고 함께해야 하는 것이다. 5년 주기의 정권하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교육개혁이란 만병통치약을 믿으면 안 된다’ 라고 선언한 ‘다이안 래비치’ 같은 교육학자도 있다. 그는 대안으로 ‘풍부한 교육과정과 충실한 수업’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일선 교사들의 입장에서 학생의 변화와 깨달음이 목표이지만 학생들은 전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을 매년 목도한다.

어쩌면 ‘수업을 통해 더 망가지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 때도 있다.

관료주의 안에서 개혁의 대상이 된 일선교사는 정작 교육개혁에 소외되는 것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 매일매일 학생들에게 소외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교사의 일상과 진로를 방해하는 관료주의에 맞서기보다는 묵묵히 ‘풍부한 교육과정과 충실한 수업’을 위해 열심을 다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