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한 손맛, 겨울 동해안 낚시 기행 2 - 포항 방파제 볼락 루어낚시 (하)

볼락회 한 접시

‘왕사미’ 볼락을 노리기 위해 선택한 포인트는 구룡포 삼정 방파제. 동해안의 명(名) 방파제로 낚시꾼들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방파제 규모가 꽤 큰데, 몇 군데의 포인트들이 있다.

먼저, 지금은 ‘POINT’(카페 이름부터 이곳이 낚시 명당임을 말해준다)라는 멋진 카페가 들어선 관풍대 주변이다. 방파제 외항 초입의 테트라포드에서 관풍대 쪽으로 캐스팅을 해 공략한다. 이곳은 수중바위와 해조류 밭이 너르게 발달해 있어 볼락들의 좋은 은신처가 된다. 그러나 수심이 얕아 대물 볼락을 만날 확률이 그렇게 높지는 않다. 다음으로는 방파제가 꺾어지는 중간 지점이다.

 

층층히 쌓인 테트라포드는 수중 요새
록피시들의 은신처이자 산란장으로 그만
밤새 사투 끝 씨알 준수한 스무마리 낚아
질기지 않게 부드럽고 쫄깃한 회는 별미
갈비뼈와 척추뼈 발라낸 ‘서더리’는 다져
참기름·맛소금으로 버무리니 특별한 맛
겉 바삭·속 촉촉 구이는 진미중의 진미

바로 앞 발 밑 수심이 3m 정도로 깊어 대물 볼락이 가끔 낚이곤 한다. 나는 그 자리를 보통 낮 낚시에 찾는다. 밤에는 테트라포드 위에서 이동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군데 좋은 포인트는 곶부리에 해당하는 방파제 끝부분이다. 이곳은 테트라포드가 끝나는 지점에서 씨알 굵은 볼락들이 종종 입질을 하곤 한다. 내항 석축과 큰 방파제 건너편 작은 석축방파제 역시 괜찮은 포인트들이다.

하지만 나는 그 좋은 포인트들을 다 그냥 지나쳐갔다. 그러고는 외항과 내항이 경계를 이루는 방파제 끝으로 가 내항 쪽 석축에 서서 테트라포드에 몸을 숨기고, 보안등 불빛이 오히려 캄캄한 그늘을 만드는 자리, 외항으로 부딪쳐 들어오던 조류가 내항으로 잔잔하게 흘러드는 방파제 모서리를 노리기로 했다. 층층이 쌓인 테트라포드는 물속에서 복잡한 수중 요새를 만들어 볼락, 우럭, 노래미, 쏨뱅이 등 ‘록피쉬(Rockfish)’들의 은신처이자 산란장, 먹이활동 환경을 제공한다. 대물 볼락은 테트라포드가 가장 멀리, 깊이 잠겨 있는 테트라포드 주변에 있을 확률이 높다.

보안등 불빛이 어느 정도 집어등 효과를 내기 때문에 따로 집어등을 켜지 않았다. 대물일수록 경계심이 많고 영리하다. 빛과 소음 등 외부 환경의 변화를 금방 눈치 챈다면 꼼짝도 하지 않을 것이다. 테트라포드는 밑걸림이 심하다. 밑걸림에 끊은 채비를 다시 묶느라 시간을 허비하거나 부산스럽게 움직이다 보면 볼락의 입질을 놓치기 일쑤다. 그러므로 불필요한 동작들을 없애고 마치 그림자처럼, 촛불처럼 간결하고 고요한 몸짓으로 채비를 던져야 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두어 시간 동안 고작 세 마리의 볼락을 만난 게 전부다. 그것도 20cm가 채 되지 않는 녀석들이다. 조금 더 무거운 지그헤드로 보다 깊은 자리를 노려보기로 했다. 곧 만조 시간, 볼락은 만조를 전후한 때에 가장 활발한 입질을 보인다.

새벽 네 시, 테트라포드 끝부분, 불빛과 어둠의 경계 지점에 캐스팅을 해 루어를 7초간 가라앉힌 후 천천히 릴을 감는데, 후두둑- 하는 진동과 함께 낭창한 낚싯대의 초릿대가 활처럼 휘어졌다. 앞서 잡았던 세 마리의 볼락과는 차원이 다른 당길심, 이리저리 달음질치며 테트라포드 구멍으로, 몰밭으로, 암초지대로 파고드는 강력한 저항에 나는 흠칫 놀라 당황하고 말았다. 빠르게 제압을 하지 못하는 사이 녀석은 테트라포드 틈으로 몸을 박아버렸다. 아무리 당겨도, 기다려도 녀석은 구멍 속에 박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채비를 끊고, 허탈한 마음에 점점 멀어지는 새벽달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곧 만조가 되고, 마침 동틀 무렵의 아침 피딩타임과 겹쳐 볼락들이 활발한 입질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 고만고만한 사이즈들이다. 아까 놓친 녀석은 분명 30㎝ 전후의 대물이었을 것이다. 놓친 물고기는 영원히 자란다. 나는 산문집 ‘낚 ; 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에 이렇게 썼다. “빨리 잊고 낚시에 집중하면 또 잡을 수 있는데, 놓친 물고기만 생각하다 결국 낚시를 망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어제 내 것이 될 뻔했던 행운을 계속 아쉬워하는 동안 지금 나에게 다가오는 기회마저 놓쳐버리고, 결국 빈손이 되어 쓸쓸한 내일을 맞는다”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낚시에 집중했다. 곧 구룡포의 아침 태양이 석류알을 흩뿌리며 수평선 위로 떠올랐다. 비록 ‘왕사미’ 볼락은 만나지 못했지만, 꽤 준수한 씨알의 볼락을 포함해서 스무 마리쯤 잡았으니 나름대로 선전한 셈이다.

 

새벽에 낚아낸 준수한 씨알의 볼락.
새벽에 낚아낸 준수한 씨알의 볼락.

낚시꾼들 사이에서 볼락은 ‘천기를 읽는 물고기’라고 불린다. 그도 그럴 것이 물때와 날씨, 수온 등 환경이 조금만 달라져도 활발하던 입질이 뚝 끊기곤 한다. 어제 잘 나오던 자리에서 오늘 안 나오고, 어제까지 안 나오던 자리에서 갑자기 폭발적인 입질이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지진이나 태풍 전후로는 완전히 입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다. 호황일 때는 누구나 쉽게 낚을 수 있는 고기이지만, 활성도가 떨어진 상황에서는 ‘꽝’을 면하기 어렵다. 볼락 낚시의 실력은 저활성기에 얼마나 볼락을 잘 유혹해내느냐에 달렸다. 고활성기에 잔챙이들의 성화를 뚫고 대물을 공략해내는 ‘사이즈 선별력’ 또한 고수에게 요구되는 능력이다. 볼락이 활동하는 수심층 탐색, 볼락이 반응을 잘 보이는 루어 선택, 입질 패턴에 따른 바늘 크기 조절, 릴 드랙 조절, 물 흐름과 구조물 등을 계산해 공략지점을 노리는 정확한 캐스팅, 집어등 활용법 등이 모두 볼락 루어낚시 기술의 영역에 해당한다.

나는 아직도 초보를 벗어나지 못해서, 밤새 찬바람에 고생한 손이 거칠어졌다. 이제는 밤샘 낚시로 지친 몸을 쉬게 해야 할 때다. 구룡포읍 ‘신대천국밥’에서 돼지국밥 한 그릇 먹고, 구룡포 해수욕장이 보이는 ‘셀렉토 커피’에 가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커피를 마신다는 뜻의 신조어)를 마셨다. 그러고는 구룡포 초입의 ‘호미곶온천랜드’에 가 뜨거운 열탕에 몸을 녹이고, 수면실에서 한숨 푹 잤다. 낮잠에서 깨니 지난 새벽의 볼락 낚시가 벌써 먼 옛날 일처럼 느껴졌다.

기포기 두 대를 틀어놓은 살림통 안에서 볼락들은 여전히 활기차게 움직였다. 오후 낚시는 생략하고, 포항에 거주 중인 선배가 미리 빌려놓은 호미곶면 강사리의 ‘토방토방 황토펜션’에 가 볼락 요리를 준비했다. 포항에 살면서도 볼락회를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는 선배를 위해, 평소에는 뼈째 썰어 ‘뼈회’를 치지만, 이날은 포를 떠서 썰기로 했다. 볼락회 본연의 식감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다. 회 뜨기에 적당한 크기로 여섯 마리를 골라 손질했다. 볼락 낚시 중 걸려 나온 돌팍망둑 한 마리도 함께 회 치기로 했다. 그러면 한 마리당 네 점씩 총 28점이 나온다. 이만하면 사내 둘이서 술안주 삼기에 충분하다. 회 한 점에 한 잔, 총 28잔이니 소주가 네 병이다. 평소 뼈회를 좋아한다는 선배의 취향을 뒤늦게 알고서는, 갈비뼈와 척추뼈 등을 발라낸 ‘서더리’를 칼로 탕탕 두드려 다진 다음, 참기름과 맛소금 넣고 버무려 뼈회다짐을 만들었다.

 

진미 중의 진미, 볼락구이.
진미 중의 진미, 볼락구이.

회만 먹으면 섭섭하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칼집을 낸 볼락 여섯 마리를 구웠다. 고소한 냄새가 피어오르고, 입안에 침이 고였다. 구이까지 상에 올리자 마침내 볼락요리 한상이 완성되었다. 매운탕이 빠지긴 했지만, 사내 둘이 먹는 술상에 지나친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다. 처음 볼락회 맛을 보는 선배는 “식감이 쫄깃하면서도 질기지 않게 부드럽고, 맛은 달다”고 호평했다. 낚시꾼들이 먹는 방식이라며 선배에게 김밥에 초장 찍은 회를 얹은 ‘볼락회김밥’을 권했다. 볼락회김밥은 낚시꾼들에게만 허락된 별미, 선배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회도 맛있지만 볼락 요리의 하이라이트는 구이다. 회가 별미라면 뼈회다짐은 특미, 구이는 진미다.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구워낸 볼락을 손으로 들고 한 입 베어 물자 나도 선배도 황홀한 표정, 선배가 외쳤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생선이 있었다니!” 선배의 흡족해하는 얼굴을 보며 나는 낚시꾼들의 속담을 고쳤다. “볼락은 마음을 읽는 물고기”라고.

/이병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