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의 계보’

노윤선 지음·글항아리 펴냄
역사·1만5천원

‘일본의 권리를 지키는 시민 모임’ 등 일본 극우 단체 회원들이 지난 1일 오후 도쿄 신주쿠에서 벌인 반한(反韓) 시위 현장에 등장한 ‘한국정벌’ 펼침막.  /연합뉴스
‘일본의 권리를 지키는 시민 모임’ 등 일본 극우 단체 회원들이 지난 1일 오후 도쿄 신주쿠에서 벌인 반한(反韓) 시위 현장에 등장한 ‘한국정벌’ 펼침막. /연합뉴스

2019년은 일본으로부터 혐한(嫌韓)이 폭풍처럼 불어닥친 한 해였다. 지소미아 조건부 동결과 정상회담 가능성으로 인해 협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곤 하나, 깊어진 골은 쉽게 회복될 것 같지 않다. 이런 와중에 일본의 미디어와 대중사회는 대혐한 시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일부 넷우익을 중심으로 한 혐한 현상은 이제 주류 미디어의 주류가 됨과 동시에 정부 주도의 혐한 성격도 띠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최초로 일본의 ‘혐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노윤선의 ‘혐한의 계보’(글항아리)가 출간됐다. 이 책은 혐한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해 혐한 담론의 출현과 정치화되고 있는 혐한까지 그 계보를 그리고 있다.

혐한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한국에서 알려진 바와 달리) 1992년 3월 4일자의‘마이니치신문’의 기사였으며, 당시에는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원망에 관한 일본인의 인식 부족을 지적하며 일본인의 반성을 촉구하는 내용이 그 중심에 놓여 있다. 그러다가 이것이 점점 한국인에 대한 혐오감, 멸시감, 체념, 우월감, 공포감, 위화감의 현상을 짚는 용어로 사용됐다.

1923년 간토대지진 때 조선인들을 가리켜 불렀던 ‘불령선인(不逞鮮人)’이란 용어가 현대에도 재등장했으며, ‘웃길 정도로 질 나쁜 한국’과 같은 말들이 나돈다. 심지어 “악(惡)이라기보다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 가까운” 게 한국인의 본모습이라고 말한다.

‘일본의 권리를 지키는 시민 모임’ 등 일본 극우 단체 회원들이 지난 1일 오후 도쿄 신주쿠에서 벌인 반한(反韓) 시위 현장에 등장한 ‘한국정벌’ 펼침막.  /연합뉴스

현재 일본은 국내 혹은 국제정치에서의 도구로 혐한을 활용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눈앞의 현실을 살피는 가운데 그 기저에 있는 뿌리 깊은 내용까지 캐내려 한다. 혐한의 사고방식은 무엇이고, 어디서 왔는지, 더욱이 일본 내 문화와 결합되면서 어떻게 거부감 없이 국민에게 주입돼 왔는지를 규명한다.

그를 위해 1990년 초반의 혐한 태동기부터 2002년 월드컵 이후 본격화된 시기, 그것의 미디어적 전개, 넷우익과 거리 시위로의 확산, 매 시기 혐한의 변곡점이 무엇이고 이것을 주도한 인물과 책은 무엇인지 등 혐한의 역사를 계보학적으로 정리해낸다. 일본에서 이는 최근의 혐한 움직임과 관련해 전체적인 지형도를 그린 1부와 박사 학위 논문 ‘일본 현대문화 속의 혐한 연구’를 근간으로 재정리한 2부로 구성됐다.

책은 야마노 샤린의 ‘만화 혐한류’를 비롯해 소설 ‘반딧불이의 무덤’‘요코 이야기’ ‘해적이라 불린 사나이’‘영원한 제로’등 혐한 관련 베스트셀러들을 정밀하게 분석했다. 저자는 이들 작품이 널리 읽히는 현상 자체가 가족애와 결합된 애국정신의 전형적인 퍼포먼스이며, 혐한이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강화돼 가는 모습이라고 평가한다.

또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에서 하나의 ‘사회적 구호’로 나타난 혐한 현상을 간토대지진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대비시켜서 바라보고 왜 증오의 피라미드가 다시 쌓아지기 시작하는지를 살펴봤다.

2009년에 30건에 불과하던 혐한 시위는 2011년에는 82건으로 늘어나더니 2012년에는 301건을 기록했다. 3년 사이에 10배 급증한 것이다. 재일코리안은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 혐한에 노출된 셈이다. 혐오 발언은 “조센진(朝鮮人)을 죽이자, 학살하자”라는 폭력적인 구호로까지 나타났다. 이는 간토대지진을 떠올리게 한다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