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규기획취재부
안찬규기획취재부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광장으로 모여든 촛불 물결이 국가 원수를 물러나게 한 나라이기도 하다. 세계 200여 국가 중 대통령을 탄핵(彈劾)한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과 독일, 브라질, 에콰도르 등 12개 국가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뉴욕타임스와 가디언즈 등 외신들은 공통으로 대규모 촛불집회가 탄핵의 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프랑스 르몽드는 “한국인들은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내려고 대규모로 움직였다. 바로 그들이 대통령으로부터 어설픈 사과를 하게 만들었고 특별검사에게 수사를 맡기게 했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도 “한국인들이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저항한 지 30년이 지난 후, 그들은 평화로운 방법으로 대통령을 파면하려고 저항했다”고 평가했다.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주의 국가의 본질이 촛불집회로 드러났다고도 볼 수 있다.

최근 포항시 남구 오천읍 주민들은 지역구 박정호, 이나겸 시의원 2명을 상대로 주민소환을 진행하고 있다. 주민소환제는 재판이나 탄핵·행정처분에 의한 파면과는 달리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통제 방법이다. 주민소환을 청구한 ‘오천 SRF반대 어머니회(이하 어머니회)’는 “주민들이 SRF폐쇄와 이전 등을 요구하는데도 오천지역 자유한국당 두 시의원이 이를 무시한 채 포항시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며 선관위로부터 주민소환청구인 대표자 등록증을 교부받아 지난 7월 말부터 서명운동을 벌여왔다. 이들이 받은 서명은 투표 발의 요건을 충족했고, 주민소환투표일이 오는 12월 18일로 결정·공고됐다. 이 제도가 시작된 2007년부터 현재까지 90여건의 주민소환이 진행됐으나, 투표까지 간 사례는 8건에 불과했던 만큼 오천읍민들의 분노가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양측은 포항시남구선거관리위원회가 주민소환투표일을 공고한 지난달 26일부터 투표 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1주일도 채 되지 않아 각종 구설이 불거졌다. 한 이장이 SNS를 통해 투표독려 문자를 보냈다가 입건될 처지에 놓였고, 논점과 벗어난 투표운동 홍보문구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번 주민소환은 SRF의 찬반을 가리는 투표가 아니라 두 시의원의 직무태만이나 잘못을 가리는 것이 목적이다. 청구한 쪽은 사실을 토대로 두 시의원을 경질해야 하는 이유를 알리고, 대상이 된 시의원들은 자신에 대한 의혹을 소명하면 된다. 선거운동처럼 경쟁이 아니므로 양측 다 선을 지키고 본인들의 주장만 알린다면 투표 운동이 과열될 이유가 없다. 양측 다 주민소환 투표와 관련한 법안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깨끗하고 공정한 투표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결은 다르지만, 광화문 비폭력 평화집회가 외신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던 것처럼 포항 오천읍 주민들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참된 민주주의를 실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ack@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