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trust는 편안함을 의미하는 독일어 trost가 기원이다. 즉 신뢰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편안함을 준다는 말이다. 상대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 불필요하게 상대를 경계할 일도 없다는 것이다.

개인이 사람을 교제할 때 뿐 아니라 국가에 대한 국민의 믿음도 마찬가지다.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낮으면 대체로 후진국으로 평가한다. 미국의 저명한 일본계 학자인 프란시스 후쿠야먀는 그의 저서 ‘트러스트’에서 “한 나라의 경쟁력은 그 나라가 가진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다.

한국이 국민에게 얼마만큼 신뢰를 갖고 있느냐는 것은 국가를 통치하는 위정자에게는 소중한 통계다. 위정자가 집행하는 정책에 대한 신뢰이자 성과로 평가된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사회조사’에서 우리 국민은 우리 사회에 대해 절반 가량이 “믿을 수 없다”고 답해 충격을 주었다. 특히 20대와 30대는 사회를 불신하는 비율이 54.9%와 51.5%로 절반을 넘었다. 사회에 대한 신뢰를 묻는 설문이 올해 처음이라 그 추이는 알 수 없으나 국민의 절반이 우리 사회를 신뢰할 수 없다면 우리 사회에 내재된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뜻이다. 조사 결과에는 요즘 젊은이의 개인주의적 성향이 반영된 부분도 없지 않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거나 정치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의 표출로 보는 것이 바른 분석이다. 청년 실업난과 자영업자의 몰락, 소득주도 성장의 부작용 등 지금의 경제적 위기감이 사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 것이다.

내로남불이라는 유행어도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의 불신을 풍자한 표현이다. 불신과 갈등으로 점철된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상에 대한 획기적 대책이 필요하다. 정부의 몫이 크다.

/우정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