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야스나야 폴랴나에 있는 레프 톨스토이 생가에 녹음이 한창인 어느 해 7월, 오솔길을 걷노라니 목소리 들린다. “여기가 톨스토이 무덤이에요.” 순간 걸음을 멈춘다. 아무런 표지도 비석도 없이 관 모양의 직육면체가 초록의 풀로 덮여 있을 뿐. 일행은 잠시 숨 고르고, 나는 선글라스 벗고 고개 숙인다. 그것이 톨스토이 무덤임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무심코 지나칠 법한 수더분한 공간에서 인류 최후의 타이탄은 누워 있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크레타의 이라클리온에 잠들어 있는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묘비명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자유롭게 살다가 영면한 카잔자키스. 이승과 저승 모두에서 아무 욕망도 어떤 두려움도 없이 초월적이고 자유로운 경지에 도달한 시인이자 소설가. 나무 십자가 뒤편 투박한 석관 위의 묘비에 새겨진 글귀는 인생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

톨스토이와 카잔차키스 무덤만큼 심금(心琴)을 울리는 무덤은 없다. 지극히 간명하되 폐부를 찌르는 소박함. 살아서나 죽어서도 거대한 족적을 자랑하는 거인들의 단순하고 질박(質朴)한 주검의 그릇!

무덤이 죽음의 형식이라면, 임종은 죽음의 방식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문제만은 아니다. ‘길가메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21세기에도 삶과 죽음의 마지막 경계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는 여전한 과제다. 주변을 돌아보라. 오늘 받은 부고장의 주인공은 대개 요양병원이나 응급실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다가 세상과 작별한 분들이다. 필시 그들 대다수는 최후의 순간에 자식도 알아보지 못한 채 임종을 맞이했을 것이다.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연명의료를 중단한 환자가 7만을 넘었고, 그런 의향을 밝힌 사람도 43만을 넘었다. 연명의료 결정제도가 도입된 2018년 2월 4일 이후 올해 10월 말까지 21개월 동안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한 사람은 7만996명이라고 전한다. 연명의료는 임종과정 환자에게 행하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및 항암제투여 같이 임종과정만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이다.

생물적인 목숨만 남아있는 상태를 지속하는 연명의료는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인간적인 존엄을 지키지 못한 채 죽음과 대면하는 환자. 정신적-물질적인 부담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가족. 그들 모두의 무겁고 수고로운 짐을 덜어주려고 시행된 제도가 차분하게 착근하고 있는 것이다. 짐작하기로 연명의료 중단의향을 지지하는 사람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생의 마지막 길만큼은 자유의지로 선택하고 싶기 때문이다.

정신이 또렷한 채 가족과 작별하는 임종의 자리는 경건하고 엄숙하며 숙연하다. 인공호흡기를 꽂은 채 맞이하는 처참한 죽음과 천양지차다. 누구나 맞이하는 생물적인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거룩한 표정과 목소리를 온가족이 함께해야 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