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인간에게 자연은 경외감의 대상이자 정복해야 할 대상이었다면, 오늘날 인간은 자연이 아닌 과학기술 앞에서 양면성을 느낀다.

칼 폴라니는 자본주의가 태어나면서 “거대한 전환이 시작됐다”고 한다. 그가 말한 거대한 전환은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이다.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인간의 자유와 이상을 파괴한다”고 보았으며, 이때부터 “인간의 삶이 비극적으로 변하게 되었다”고 한다. “머지않아 자본주의가 자신의 문제를 노정하며 결국 도태되거나 붕괴될 것이다”고 보았다.

자본주의는 그가 활동했던 제2차 세계 대전 무렵보다 현재 더 깊이 우리의 삶에 침투해 있으며,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예견은 여전히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과학기술의 발전은 기존의 삶의 방식을 폐허로 만들고, 그 위에 새로운 것을 창조해나갈 것인가를 깊이 숙고해 보아야 한다.

미래사회에서 신재생에너지와 대용량전기저장장치의 급속한 발전은 화석연료의 의존도를 낮출 것이며, 인공지능과 로봇은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다. 자율주행자동차는 자동차 수를 격감시키며, 자동차와 연관된 운송과 금융, 보험과 같은 서비스산업의 근간을 흔들어 놓을 것이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킬러로봇의 등장은 전쟁, 대테러, 범죄예방과 같은 국가안보와 치안을 새로운 형식으로 정립할 것이다. 동시에 인간에게 위협을 가할 것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발전은 대규모 정보를 기반으로 지식노동자에게도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방대한 양의 법률과 판례를 데이터베이스화하여 빅데이터로부터 판결을 내려주는 인공지능 판사와 변호사, 개인의 병력에 합당한 처방을 내려주는 인공지능 내과의사와 영상의학과 의사, 인공지능 기자는 신문이나 방송기사를 자동으로 생성해낼 것이다.

이러한 인공지능이 들어서면 인간은 쫓겨날 수밖에 없다. 인간만 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던 인간의 오랜 경험과 지식, 연륜을 바탕으로 했던 영역에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인간의 단순지식노동을 밀어낼 것이다. 실제로 시카고 트리뷴지가 자사의 지역신문 기자 20여 명을 해고하고 저너틱사에 외주를 주어 기사를 작성하기로 했다.

화제가 된 것은 기사를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아웃소싱 방법을 채택했다는 것이 아니라, 기사작성의 주체가 로봇이라는 점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에 의한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자동으로 기사를 작성하여 뉴스를 제공해 준다. 2010년에 설립된 저너틱사는 소셜 사이트를 포함한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정보와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여 자동으로 기사를 생성, 제공한다. 이러한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폴라니처럼 과학기술문명의 불길한 미래를 예측하며 이 시대가 어서 끝나기를 바랄 것인가, 아니면 이러한 과학기술을 이용해 이것을 기회로 삼아 새롭게 나아갈 것인가? 다가오는 첨단기술시대에 불안을 느끼는 것은 보수적이고 안정을 추구하는 뇌의 명령인지도 모른다.

거대한 전환에 맞서려면 생물학적이고, 유전학적인 차원에서 요청되는 뇌의 명령을 거부하고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익혀나가야 한다.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지식을 배우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밀려올 미래는 양날의 칼이다. 미국의 과학철학자 돈 이데는 과학기술의 양면성을 ‘확장·축소·변형’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과학기술의 사용은 대상이나 경험의 특정한 측면을 확장시키지만 한편으로 축소시키기도 한다. 자동차의 경우 주어진 시간 안에 보다 먼 공간적 이동이 가능하도록 우리의 경험을 확장시키지만, 출발지와 목적지 사이에 펼쳐진 파노라마 같은 공간을 사라지게 만듦으로써 도보여행이 줄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축소시켰다.

걸어다니는 사람에 비해 자동차를 사용하는 사람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체험한다. 그런 점에서 과학 이전의 인간과 과학을 입은 인간은 동일할 수 없다. 과학기술은 우리의 경험을 확장시키며 이를 통해 정체성을 변화시킨다. 인간이 새로운 과학기술을 만들지만, 과학기술이 인간과 세상을 만들기도 한다. 과학기술을 입은 미래인간은 지성의 앰프(Intelligence Amplication, IA) 효과로 더 창의적이고 행복한 인간으로 변모할 것이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이와 함께 과학을 입은 인간은 과학기술이 가진 양면성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과학기술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되고 말겠지만, 그 변화를 무작정 따라간다면 재앙을 맞을 수도 있다. 이 양면의 압력을 이겨낼 수 있는 교육제도가 필요하다. 그러한 교육제도는 공학만을 강조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공학만큼이나 인문학·예술 등도 함께 강조되어야 한다. 공학자가 인문학이나 예술교양을 쌓아야 하듯 인문학이나 예술분야에서도 공학교양을 쌓아야 한다. 이런 융합교육이 불투명한 미래를 투명하게 만들 것이다.

미래는 미래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형성된다.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지식을 배우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때 미지로 남겨진 미래는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미래에 대한 준비는 국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몫이기도 하다. 미래의 일을 미래에 준비할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준비해 나가야 한다. 오늘이 미래를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