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한 나라나 지역의 문화예술이 꽃을 피웠다면 그곳의 토양에는 반드시 선조들이 남긴 유무형의 유산을 기반으로 하는 인문학적 소양과 정신문화 유산의 철학이 존재한다. 또 그러한 지역일수록 밑바탕에 흐르는 정신적 유산은 문화예술의 맥을 잇는 후손들의 철학으로 녹여져 새로운 독특한 문화의 흐름을 탄생시키기 마련이다. 문화예술 활동의 원리는 컴퓨터의 작동원리와 유사하다. 한 지역의 문화예술 전반을 관통하는 정신적 문화유산은 마치 컴퓨터의 운영체계가 수행하는 역할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일관된 큰 틀로서 작동한다.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예술회관, 극장, 공연시설 등과 같은 창작무대가 컴퓨터의 하드웨어라면 그곳을 무대로 열리는 각종 행사나 공연프로그램은 소프트웨어다. 실제 해당 지역의 문화예술 유산을 계승하고 관련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문인, 사가, 예술가, 학자들은 어디에 속할까. 컴퓨터에 비유하면 하나하나가 데이터일 것이다. 양질의 데이터가 많아지고 다양해질수록 큰 틀인 운영체계 속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들은 더욱 잘 돌아가고 결과적으로는 매우 양질의 결과물을 생산하면서 또 다른 새로운 데이터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동안 그저 제대로 먹고 사는데 급급하다보니 외형의 확장과 경제력에만 무게중심을 두어온 것도 사실이다. 물론 국제사회에서 여전히 힘의 논리는 경제력이 좌지우지하고 있지만 나라의 품격은 문화예술과 그 바탕을 이루는 인문학의 수준이 결정하는 것도 사실이다. 시험을 통한 경쟁사회에서 무시했던 인문학이야말로 지금과 같은 혁신과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영감이 모든 분야의 경쟁력을 키우는데 필요한 핵심소재인 것이다. 이는 이미 시카고대학의 시카고플랜이 입증한지 오래다. 앞으로도 문화예술과 인문학의 중요성은 변치 않을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지역의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하여 부를 축적한 기업이 해당 지역의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메세나(Mecenat) 활동은 가장 기초 데이터인 해당분야 종사자들을 확대재생산하는 효과를 높인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2019년 현재 한국메세나협회에서 메세나 활동에 참가중인 회원기업은 232개사에 이른다. 포항도 포스코, 티씨씨스틸 등 메세나 활동을 지속해온 기업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포항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은 매우 많다.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서 활약할 젊은 인재들을 키워나가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저변의 확대와 다양성을 지닌 젊은 인재들이 무엇보다도 많이 육성되어야할 분야는 인문학분야다. 포항의 문화예술이 고유의 특성과 정체성을 나타내려면 그 밑바탕의 정신과 철학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할 인문학적 기반이 함께 하여야만 균형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지역 청년들의 지역학,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이러한 때에 지역 기업들이 금액의 크기와는 무관하게 지역의 문화, 역사 등에 관심을 기울이는 자발적인 메네사 활동이 활발하게 확산되었으면 한다. 퇴근시간 빨라진 분들은 가족들과 꿈틀로 탐방이라도 한번 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