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룡 서예가
강희룡 서예가

단식은 건강이나 항의 표시를 할 때 동원되는 행위이다. 의학계에서는 단식을 대체로 에너지 섭취를 1일 200㎉ 미만으로 정의한다. 대략 커피믹서 4개 먹는 정도이다. 만약 저항의 의미로 단식한다면 72시간 이상이 필요하며 이때는 물 이외 다른 것(소금은 예외)은 입에 대서는 안 된다. 단식에서 중요한 것은 72-72(72시간-72일)법칙이다. 의학적으로 72시간 가량 굶으면 체내 포도당이 모두 사용돼 인체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뼈와 근육, 장기 등에서 에너지를 모두 빼앗아간다. 학자들이 단식의 한계를 72일로 보는 경우는 대부분의 사람은 72일이면 굶어죽기 때문이다. 단식은 2500년 전 중국에서 발간된 한의학 최고의 원전인 ‘황제내경(黃帝內經)’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책은 소문(素問)과 영추(靈樞) 두 부문으로, 소문편에서는 인체의 생리현상과 양생법에 대해 기술하였고, 영추편에는 침구의 임상적인 활용에 대해 서술했다. 조선 초 태종실록에 양녕대군에 대한 단식기록이 실려 있다. ‘세자(양녕)가 몰래 기생 봉지련을 궁중에 불러들였다.(중략) 임금이 듣고 수하에게 곤장을 때리고 봉지련을 가두니 세자가 마침내 걱정해 음식을 들지 않았다.(태종10년, 1410년 11월)’ 태종이 봉지련을 가두자 세자가 단식으로 저항한 것이다. 또 다른 사례는 조선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인 사도세자의 죽음이다.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의 경우 역시 9일간의 폭염 속에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로 고통스럽게 굶어 죽어갔다.

한국정치사에서 위정자들의 대표적인 단식투쟁은 1983년 5월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YS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이던 5월 18일부터 6월 9일까지 ‘대통령 직선제’등 5개항을 내걸고 23일간 단식을 했다. 이 투쟁으로 민주화추진협의회가 정식 출범하여 4년 뒤 6월 항쟁과 대통령직선제로 이어져 정치민주화에 이정표를 세웠다. 1990년 평화민주당 총재였던 DJ는 10월 8일부터 20일까지 13일간 ‘내각제 포기와 지방자치체 도입’을 외친 단식을 통해 지방자치제 결실을 맺었다. 1995년 전두환 전 대통령도 수감 중이던 안양교도소에서 5공 청산에 항의하며 27일간 단식을 했으나 역사의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소미아, 공수처, 패스트트랙 등 굵직한 정치현안들에 대한 야당 요구를 내걸고 죽기를 각오하겠다며 무기한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하지만 21세기의 깨어있는 국민들은 단식이라는 극단적인 투쟁보다는 기존 패거리 정치에 함몰되어 있는 정당의 비합리적인 조직운영과 정치구도의 개혁을 더 바라고 있다. 인재등용이 없고, 진영논리에 빠진 패거리 정치의 결과는 한탕주의로 흘러 국가미래를 암울하게 한다. 이제라도 구태정치의 답습에서 벗어나 개인의 영욕을 내려놓고 국가의 미래지향적 정책과 대안을 제시하는 민주정당으로 탈바꿈해야 하는 시점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