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한국과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의 대화관계 수립 30주년을 기념하여 25일부터 부산에서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번 특별정상회의는 2009년 제주, 2014년 부산에 이어 세 번째이며, 한·메콩 정상회의도 처음으로 개최된다.

이 회의는 현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신남방정책’의 일환이다. 동남아시아의 경제적·전략적 가치가 매우 크고 한국 외교의 다변화가 절실하다는 점에서 아세안 외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전반기에 이미 아세안 10개 회원국 방문을 완료함으로써 정책추진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또한 이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대통령직속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와 외교부 ‘아세안국’을 신설하고, 주아세안대표부를 격상하는 등 제도적 기반을 구축했다는 점도 평가할 만 하다.

그럼에도 신남방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 또한 적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협력파트너인 ‘아세안’과 ‘아세안 방식(ASEAN way)’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대통령의 말레이시아와 캄보디아 방문 때 있었던 ‘의전 실수’는 아세안에 대한 전문성 부족이었고, 아세안의 독특한 국제협력방식인 ‘협의를 통한 합의, 점진적·비공식적 접근, 조용한 외교(quiet diplomacy)’에 대한 이해 없이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것은 정책결정자는 물론이고 외교실무자들의 아세안에 대한 전문성이 크게 제고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장기적 관점에서 ‘윈-윈’할 수 있는 호혜적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아세안은 중국 다음으로 중요한 교역대상이며, 한국과 아세안 교역은 한국의 일방적 흑자이다. 한국의 무역흑자는 2018년 406억 달러, 2019년 10월 현재 300억 달러이다. 이러한 교역불균형은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협력의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아세안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를 비롯하여 다양한 방식의 지원을 더욱 확대함으로써 모두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셋째, 사회문화적 교류와 협력의 강화이다. 한·아세안 관계는 상호신뢰가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쌍방향의 사회문화적 교류확대가 절실하다. 현재는 동남아지역의 한류 확산에 비해서 한국인의 동남아문화에 대한 이해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에 살고 있는 동남아 출신의 결혼이민자 및 이주노동자들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한·아세안 관계 발전에 가교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세안을 국내정치나 대북정책에 이용하려는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조용한 외교’를 선호하는 아세안의 협력방식을 고려할 때 ‘요란한 외교 이벤트’는 대국민 선전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실질적 협력을 증대시키기는 어렵다. 또한 이번 특별정상회의를 대북정책에 활용하려고 김정은을 초청했다가 거절당한데서 알 수 있듯이, ‘주객전도(主客顚倒)의 외교’는 북한뿐만 아니라 아세안으로부터도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