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바닷길 끝에서 안녕, 안녕

영덕 칠보산에서 바라본 겨울 일출

빛은 차갑고 공기는 깨질 듯 투명하다. 우듬지 끝에서 쇠잔한 촛불처럼 마른 잎사귀가 흔들린다. 나는 지금 창문으로 서울의 쓸쓸한 겨울 오후를 바라보고 있다. 방 안에는 클라라 주미 강이 연주한 마스네의 오페라 ‘타이스의 명상곡’이 흐르고, 오른손에는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 원두를 갈아서 내린 커피가 들려 있다. 음악도, 커피도, 책상 위에서 빛과 향기로 타는 향초도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나는 모든 걸 다 잃어버린 기분에 잠겨 있다. 아라파호 인디언들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불렀는데, 어째서 내겐 텅 빈 공허와 부재만 남은 걸까. 축제가 끝난 무대 위에 포스터와 팸플릿이 떨어져 나뒹구는 것처럼, 내 마음에는 지금 낙엽들이 스산하게 일어섰다가 넘어지는 중이다.

 

“바닷길에서 스쳐간 수많은 햇빛과
바람과 파도와 사람들이
나에겐 영원의 풍경이 되었다
경북 바닷길 위에서 세상은 한없이 아름다웠고
나는 그 아름다움에 미쳐 몇 개의 계절을
환각처럼 고통 모르고 살았다”

경주 황리단길의 6월 장미
경주 황리단길의 6월 장미

환청처럼,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지난여름 포항 보경사로 가는 길, 내 귀에 푸른 잎사귀의 방울종을 잔뜩 매달아주던 내연산 매미울음이다. 추억의 주파수를 돌려 본다. 또 다른 환청일까. 아니다. 내 기억에서 들려오는 영덕 고래불의 파도 소리다. 울진 덕구계곡 용소폭포 소리도 들린다. 국립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의 에밀레 소리가 무수한 금빛 동심원을 그리며 내 마음에 나선형 통로를 열고 있다. 그 안에서 빛과 소리와 냄새가 한 데 섞여 흘러나온다. 수평선이 훔쳐간 천국의 푸른 빛, 박달대게 찌는 냄새, 세상 그 어떤 술보다 아찔하게 달큼한 아까시 향기, 동궁과 월지에 쏟아지던 여자아이들 웃음소리, 울릉 도동의 아침놀, 문무대왕 수중릉을 향해 흔들어대던 무당의 방울소리…… 봄부터 가을까지 내가 다녀간 경북 바닷길의 풍경이다.

비로소 마음의 겨울에도 햇볕이 든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여행은 일종의 정신 치료제이다. 그것은 일상생활 속에 갇혀 자신이 얼마나 노예가 되어 있는가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살고 있던 자에게 갑자기 그가 그 속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던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그것은 그래서 한편으로는 두렵고, 한편으로는 즐겁다. 자신의 달팽이집을 떠난다는 점에서는 두렵고,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는 점에서는 즐겁다”고 말했다. 경북 바닷길을 걸으며 나는 정말로 병들고 쇠약해진 내면이 건강하게 회복되는 걸 경험했다. 그래서일까. 긴 여행을 마친 후 허전함을 못 견뎌 무기력에 빠져 있었다. 다시 비좁은 달팽이집으로 돌아와 숨 막히는 일상에 멱살 잡히는 동안 경북 바닷길은 옛 일처럼 까마득히 멀어졌다. 그러나 온몸으로 받아들였던 낯선 감각들이 눈코입 그리고 귀에 아직 남아 있어, 눈을 감으면 나는 여전히 푸르디푸른 길 위에 서 있다.

이제 나는 저 금빛 기억의 나선형 통로로 딱 한 번만 더 들어가 보려 한다. 지나온 걸음들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 글이 경북 바닷길을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의 근사한 마지막 페이지가 되길 바랄 뿐이다.

경북 바닷길은 발로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귀로, 그리고 코와 입으로 여행해야 한다. 7번국도를 따라 울진에서 영덕으로 이어지는 ‘블루로드’, 포항 호미곶에서 구룡포까지 연결된 해파랑길 14코스, 포항 장기에서 감포로 가는 해안도로에서는 오직 두 눈을 바다에 띄워야 한다. 울릉도 행남바닷길과 태하해안산책로를 걸을 때도 마찬가지다. 가장 순전한 푸른색이 경북 동해에 넘실거린다.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바다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 쪽빛 파도를 훔친 두 눈이 푸른 수의(囚衣)를 입은 채 포승줄이 된 수평선에 꽁꽁 묶여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끔씩은 눈을 돌려 울진 불영계곡의 금강송을, 영덕 칠보산의 단풍을, 포항 보경사의 탱자나무를, 경주 황리단길의 야경을 보아야만 한다.

고래불로 세차게 달려오는 파도 떼의 말발굽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라. 밤에 월송정에 오르면 달빛에서도 반짝반짝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구룡포 삼정리 선창가 노을 아래를 걷다가 줄에 걸린 과메기들이 생나무 타는 소리로 몸 부딪칠 때 놀라지 말라. 울릉도 북서쪽 대풍감 절벽에서는 하늘도 바람도 머리를 풀어헤치고 운다. 경주의 아무 고택에서나 하룻밤을 자고 나면 천 년을 날아온 새떼들이 귓가에 금가루 은가루를 물어다 나르는 신비한 소리를 듣게 되리라.

늦봄에 걸으면 황홀하게 엎질러진 아까시 향기에 정신을 못 차리고, 여름에 걸으면 햇살에서 피어오르는 뜨거운 연필심 냄새에 마음 여백마다 정념의 문장들이 쓰일 것이다. 가을에는 한 그루 소나무에서도 만 그루 금강송 군락의 서늘한 솔향이 나고, 겨울에는 대게 찌는 냄새가 마음속으로까지 짭조름하게 스며든다. 경주에 가서 황남빵이 노릇노릇 익어 가는 냄새를 맡아봐야 한다. 포항 죽도시장에서 돼지머리 삶는 냄새를 들이켜 봐야 한다. 울릉도 향나무들의 살 내음과 영덕 괴시마을 돌담에 내려앉은 조각구름 냄새를 들숨에 삼켜 봐야 한다.

 

포항 남구에서 북구로 가는 길의 가을 저녁놀
포항 남구에서 북구로 가는 길의 가을 저녁놀

봄에는 도다리쑥국을 먹어야 한다. 바다의 못생긴 것과 땅의 못생긴 것이 몸을 합쳐 한 그릇의 아름다운 봄으로 오는 것을 떠먹으면 눈물이 난다. 여름에는 물회를 먹어야 한다. 경북 동해의 여름 더위는 물회 없이는 견뎌낼 수 없다. 사랑하는 이와 마주앉아 먹으면 달콤한 것은 여름의 낭만이고 새콤한 것은 사랑의 기쁨이 된다. 가을에는 문어를 삶아 먹어야 한다. 통통한 문어 다리가 옅은 단풍빛으로 물들면 제대로 삶아진 것이다. 쫄깃쫄깃한 문어숙회를 씹을 때 근심 걱정도 함께 씹으면 좋다. 겨울에는 박달대게와 홍게, 과메기 그리고 볼락을 먹어야 한다. 다정한 사람들과 함께라면 한 상에다 대게부터 볼락까지 다 올려놓고 만찬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밤이면 달의 꼬리가 희미해질 때까지 술잔이 돌기 쉬우므로, 아침에는 반드시 물곰탕이나 복국으로 속을 풀어야 한다.

경북 바닷길 여행에 아쉬운 점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울진은 여전히 교통 여건이 불리하다. 교통 여건이 점차 개선될 때 지역 관광 자원에 대한 홍보도 더 적극적으로 이뤄졌으면 좋겠다. 영덕은 대게와 회 말고도 다른 먹거리들이 많이 개발되어야 한다. 관광객들에게 선택의 다양성을 제공해줘야 한다. 강구항을 비롯해 이곳저곳 너무 많이 설치되어 미관을 해치는 대게 조형물들은 정리를 좀 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울릉도는 딱 하나, 비싼 물가가 문제다. 육지와 멀리 떨어진 지리적 제한이 있다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여행지라는 오해만큼은 확실히 벗어야 한다. 포항은 여러 관광 인프라가 잘 마련되어 있지만, 1인 여행객들이 이용하기 편한 게스트하우스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트렌드에 맞는 숙박시설이 생겨나길 희망해본다. 경주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우려된다. ‘황리단길’이 있는 황남동에는 지금 이 시간에도 새로운 한옥 건물이 지어지고 있는데, 겉의 형식만 한옥이고 전통일 뿐 그 속은 획일적인 유행문화로 채워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주라는 도시의 특별한 매력은 오래된 가치를 지켜나갈 때 함께 보존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지적들은 다 너무 사랑하기에 생겨나는 집착의 산물이다. 괜한 노파심이 빚어낸 볼멘소리일 뿐이다. 봄부터 겨울까지 내가 걸었던 경북 바닷길 537km는 내 한 생애를 사로잡은 빛과 색 그리고 온도가 되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내가 모르는 곳에서 저 동해는 한없이 아름답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그때 눈물 어린 눈자위로 큰 불빛을 쳐다보며 소리쳤었던 것이다ㅡ‘안녕’이라고. 사실 이 엄청난 불빛의 대화 앞에서 내가 자신 있게 뱉어낼 수 있었던 유일한 단어는 해후를 알리는 ‘안녕’ 이외에 아무것도 없을 것이 아닌가. 그래 나는 한없이 부르짖고 있었다ㅡ‘안녕 안녕’이라고.” 다시 김현의 글(‘불빛이 말하는 이유’)을 인용하는 것은 이제 나도 저 푸른 바닷길을 향해 안녕, 안녕이라고 인사해야 할 때가 됐기 때문이다. 삶은 우연들로 이뤄진 필연이다. 바닷길에서 스쳐간 수많은 햇빛과 바람과 파도와 사람들이 나에겐 영원의 풍경이 되었다. 경북 바닷길 위에서 세상은 한없이 아름다웠고, 나는 그 아름다움에 미쳐 몇 개의 계절을 환각처럼 고통 모르고 살았다. 다시 만날 그때까지 안녕, 안녕. /시인 이병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