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평양냉면’은 슴슴한 북한식… 피난민들의 수십 년 업력이 쌓은 ‘정통의 맛’

‘서부냉면’의 평양냉면.
‘서부냉면’의 평양냉면.

왜 ‘영주의 평양냉면’인가?

왜, 느닷없이 ‘영주 냉면’일까? 영주 인근인 봉화, 안동 문경 등지에는 이름난 냉면집이 없다. 경북 전체나 인근 충청도에도 별다른 냉면집은 드물다. 영주에는 업력 50년을 넘긴 냉면집이 있다.

냉면은 북한 음식이다. 서울 장충동에서 냉면 노포가 시작된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전쟁 당시, 월남한 이들이 많이 살았다. 장충동 일대는 서울의 끝자락이었다. 피난민들이 쉽게 자리 잡았다. 이 지역에 서울의 냉면 노포들이 문을 연 이유다. 냉면은 북쪽 평안도 일대에서 온 이들을 통하여 서울에 정착한다. 피난민들을 통하여 냉면집이 생긴다. 냉면집 이름에 ‘평양’을 붙인 이유다. 영주의 냉면집들도 평양, 평안도, 북한발 냉면 전문점이다. 한국전쟁 때 피난 온 이들이 문을 열었다.

 

서문가든

윗대가 월남 가족이다. 현재 가게 위치와 부근도 마찬가지. 피난 온 이들이 시작한, 인견(人絹) 등을 생산하는 작은 수공업체가 가득했던 곳이다. 인견은 레이온(rayon), ‘사람이 만든 비단’ ‘인조견’이다. 누에고치의 실 대신 나무 펄프로 만든다. 서구에서 시작된 인조 비단이 한반도로 들어온다. 평안도 일대에 인견 공장이 많았고,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을 통하여 영주 풍기 지역으로 들어온다. ‘풍기 인견’의 시작이다. 현재 ‘서문가든’ 일대는 인견 공장 지역이었다. 자리에 누워도 인견 공장의 베 짜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서문가든’의 냉면은 오래된 평양냉면의 모습 그대로다. 메밀 함량은 70%, 나머지는 전분을 넣는다. 주문을 받은 후 바로 반죽을 시작한다. 여전히 손반죽을 고집한다. 냉면 뽑는 기계는, 당연히, 유압식이다. 오래전에는 손반죽, 사람 힘으로 내리눌러서 국수를 뽑는 방식이었다. 1980년대 이후, 냉면 기계는 대부분 유압식으로 바뀐다.

냉면 고명은 원형 평양냉면 그대로다. 오이, 달걀 반쪽, 배나 무 등으로 고명을 얹는다. 매운 고추 등은 사용하지 않는다. 냉면 면발에 가뭇가뭇한 점이 있다. 하얀 녹쌀이 아니라 도정이 덜 된 거친 녹쌀을 사용한다. 검은 자국은 녹쌀 속껍질이다.

재미있는 것은 반찬. ‘슴슴한 맛’을 추구하는 북한식은 아니다. 냉면은 북한식 그대로, 반찬은 ‘경북 영주 방식’이다. 냉면에 맵고 짠 영주의 밥상 반찬을 더했다.

겨울철에 선보이는 콩비지가 대단히 좋다. 풍기 지역이다. 부석태(浮石太)를 사용하여 북한식 콩비지(되비지)를 만든다. 북한식 ‘되비지’는 비지가 아니라 날콩을 삶아서 통째로 비지찌개를 만든다.

2010년에 촬영한 서부냉면집 사진이다. 당시에도 냉면과 더불어 불고기, 고기를 내놓았다.
2010년에 촬영한 서부냉면집 사진이다. 당시에도 냉면과 더불어 불고기, 고기를 내놓았다.

서부냉면

오래된 냉면 노포다. 불과 10~20년 전에는 “한강 이남에는 서부냉면만이 평양냉면 전문점”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마당이 널찍한 가정집 한 귀퉁이에서 냉면을 만들었다. 이 지역 고기가 유명하니 고깃집도 겸했다. 지금도 불고기와 냉면을 같이 내놓고 있다.

냉면은 전형적인 북한식 평양냉면. 물냉면이다. 육수 색깔이 상당히 검은 것이 특징. 면발은 꾸준히 달라지고 있다. 메밀 함량보다는 녹쌀의 도정 차이가 있다. 때로는 완전 도정한 녹쌀을 사용, 면 빛깔이 흰색이었다가, 때로는 가뭇가뭇한 점들이 박힌, 도정을 덜 한 녹쌀을 사용한다. 예나 지금이나 손님이 주문하면 그때부터 냉면 국수용 반죽을 시작한다. 메밀 함량도 상당히 높다. 반죽에 전분을 사용한다. 냉면 가락의 겉면이 매끄럽고, 반짝거린다.

육수도 평양 방식 그대로다. 때로는 닭고기, 한약재 냄새가 났다. 원형 물냉면용 육수 재료는 닭, 꿩, 쇠고기를 모두 아우른다. 닭, 꿩, 쇠고기 어느 것이나 흠잡을 일은 아니다. 평양냉면을 제대로 내놓는 집에서는 돼지 살코기 혹은 뼈를 사용하기도 한다. 냉면 가락 위에 돼지고기와 쇠고기 수육이 동시에 올라간다. 두 가지 고기나 뼈를 모두 사용했다는 뜻이다. ‘서부냉면’은, 지금은, 쇠고기 위주의 육수다.

50년에 가까운 업력이다. 3대 전승 중.
 

중앙식육식당 전경.
중앙식육식당 전경.

‘영주 한우갈비’는 숙성보다 생육… 소백산 자락서 제대로 키운 신선한 육질에 반하다

왜 영주 한우갈비인가?

영주 쇠고기 마니아들이 제법 많다. 영주의 쇠갈비, 쇠고기는 특징이 있다. 별다른 장식 없이 무심한 듯 내놓는다. 그릇에 곱게 펼치지 않는다. 갈비의 경우, 경북지방에서는 대부분, 늑간(肋間)살을 곱게 펼치지 않는다. 양념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늑간살을 있는 모습 그대로 갈라서 내놓는다. 고기 단면이 네모꼴일 때가 많다. 고기가 상당히 두껍다. 숙성보다는 생육의 신선한 맛을 드러낸다. 얼마간 질긴 느낌을 준다. 입안에서 기름기가 살살 녹는 ‘한우암소갈비’보다는, 씹는 식감이 좋은, 얼마간 질긴 갈비를 선호한다. 이른바 ‘마블링’보다는 살코기 원래의 맛을 즐긴다.

영주는 소백산 자락이다. 태백산맥과도 멀지 않다. 일교차가 심하다. 고기나 채소 모두 깊은 맛이 있다. 영주 쇠고기, 영주 갈비가 맛있는 이유다.

 

‘중앙식육식당’의 갈빗살.
‘중앙식육식당’의 갈빗살.

중앙식육식당

영주에는 삼겹살 등 돼지고기 전문점보다 한우 갈빗살 전문점이 훨씬 많다. ‘골목마다 갈빗살 집’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중앙식육식당’은 그중에서도 비교적 오래된 노포다. 고기는, 영주의 다른 식당과 비교해도 질긴 편이다. 숙성보다는 생육의 싱싱한 맛을 따른다. 크지 않은 가게다. 입구에 들어서면 주방, 계산대에서 고기를 거는 쇠꼬챙이를 볼 수 있다.

숯불에 석쇠를 사용한다. 한우갈비가 150g 기준 25,000원이다(2019년). 갈빗살이 유일한 메뉴인데, 메뉴판에 손글씨로 안창살 30,000원이라고 덧붙였다.

 

‘소앤소한우전문점’의 갈빗살.
‘소앤소한우전문점’의 갈빗살.

소앤소한우전문점

비교적 최근에 문을 연 가게다. 가게 내부는 식사보다는 저녁 술자리에 어울리는 인테리어. 검은색, 붉은색 위주의 깔끔한 분위기다. 연탄불이 어울릴 법한 둥근 식탁 위에 숯불을 놓고 고기를 구워 먹는다.

부분육으로 정형한 고기를 가져와서 가게에서 손질하여 사용한다. 재미있는 것은 고기 구성. 접시에 내오는 고기의 질이 다르다. 아래는 ‘마블링’이 적은 갈빗살 위주. 접시 위에는 살치살에 가까운, 마블링이 많은 고기를 얹었다. 기름기가 많은 부위는 눅진한 맛을 내고, 아래의 갈빗살은 얼마쯤 질긴 고기 특유의 맛을 낸다. 숙성육보다는 싱싱한 고기 맛을 살린 구성이다. 젊은 세대, 외지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고기 구성이다.

 

‘횡재먹거리한우’의  등심.
‘횡재먹거리한우’의 등심.

횡재먹거리한우

풍기 동양대 부근에 있다. 다른 고깃집과는 달리 메뉴가 상당히 다양하다. 청국장, 육회비빔밥, 갈비탕 등의 메뉴도 권할 만하다. 여러 가지 음식을 내놓지만 하나하나 정성을 기울였다. 수준급의 음식이다. 고기도 갈빗살을 비롯하여 등심도 아주 좋다. 영주 토박이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영주에서 생산된 원육을 고집한다. 등심, 갈비, 육회(우둔살), 갈비탕 등을 모두 내놓는 것은, 덩어리 고기를 식당 내에서 손질한다는 뜻이다. 밑반찬도 수준급이다. 고기 가격이 상당히 싸다는 점도 매력적. 이 지역 고깃집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숯불 직화 방식이다. 마블링이 적당한 고기를 내놓는다. 기름기보다는 살코기의 맛을 제대로 살린다.

 

‘횡재먹거리한우’의  청국장
‘횡재먹거리한우’의 청국장

영주 맛집 2곳

역한 냄새가 나지 않는 ‘한결같은’ 맛을 짓다
 

학문적으로 배워 만들어낸 청국장 맛이 꾸준한 손님을 부른다.
학문적으로 배워 만들어낸 청국장 맛이 꾸준한 손님을 부른다.

한결청국장

3대 전승 중이다. 가게 업력은 조금 혼란스럽다. 처음 가게 문을 연 것은 1970년대다. 가게 이름은 ‘인천식당’. 1980년대까지, 상당수 가게가 그러했듯이, 영업 허가도 없이 운영했다. 1980년대 정식 허가를 받고 운영하기 시작했다. 현재 식당 이름 ‘한결청국장’을 사용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창업주가 20~30년간 운영했던 가게를 아들 부부가 2000년대부터 운영하기 시작했다. 청국장에 기울인 노력이 대단하다. 2대 안주인이 멀리 대구까지 가서 청국장 공부를 따로 했다. 원래 손님이 꾸준했던 가게다. 2대에서 ‘학문적으로’ 청국장을 배워서 역한 냄새가 나지 않는 청국장을 만들었다. 손님이 꾸준한 이유가 있다. 현재 남편은 청국장 만드는 일을 위주로 하고, 아내는 식당을 운영한다. 덕분에 청국장 가루나 생 청국장을 전국적으로 통신 판매할 수 있다.

재미있는 음식은 ‘콩탕’이다. 이 지역의 콩이 좋으니 청국장을 빚고, 한편으로는 콩탕을 만든다. 콩탕은 ‘콩으로 만든 탕’ 즉, 콩을 삶아서 거칠게 간 후, 마치 비지 탕이나 찌개같이 만든 것이다. 북한식 ‘되비지찌개’ ‘되비지탕’이 영주 인근의 콩탕이다.

 

대중적인 음식점이만 재래 된장을 사용해 반찬들이 짭잘하다.
대중적인 음식점이만 재래 된장을 사용해 반찬들이 짭잘하다.

인삼·상황버섯 등 온갖 약재로 끓인 삼계탕

토방식당

별다른 특징이 없는, 평범한 식당이다. 영주 시내에 있다. 가게 유리에 고기부터 청국장, 상황삼계탕 등의 메뉴를 써 붙였다. 큰 기대 없이 들어가서 주문을 한다. 반전은 이 식당의 밑반찬들이다. 된장이나 무장아찌, 깻잎절임 등이 상당히 좋다. 모두 직접 담근 것이다. 채소와 더불어 먹도록 내놓는 된장은 압권이다. 투박하진 않지만 재래, 집 된장의 꼴을 갖추었다. 물기가 많지 않고 제법 되직한 된장이다. 직접 재배한 채소나 인근에서 구한 식재료들을 사용한다.

영주는 풍기 인삼이 흔한 곳이다. 인삼을 넣은 삼계탕이 유명하다. 이 식당의 삼계탕은 인삼은 물론, 각종 약재, 상황버섯 등을 넣은 것이다.   /음식평론가 황광해

    음식평론가 황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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