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뇌는 죽음을 다른 사람의 일로 생각하게 만든다.”

‘뉴스위크’에 실린 이스라엘 바르일란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죽음이라는 정보를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과 관련된 것으로 분류함으로써 자신의 죽음을 의식하지 않도록 한다. 누구나 죽는다는 보편적인 죽음의 문제를 자신만큼은 예외로 인식하는 뇌의 방어기제로, 부고 소식을 접해도 남의 일로 여겨 자신의 마지막을 떠올리기 쉽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러나 우린 모두 죽는다. 어느 누구도 비껴갈 수는 없다. 문득 죽음의 문제를 자신과 관련지어 생각해보면 성공과 성취만을 좇아온 삶을 리셋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괴테는 말한다. “모든 사람은 성공하려고만 할 뿐 성장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성장하지 않는 삶이 어찌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세속적 욕망에 따라 남보다 앞서기 위해 질주했던 삶이라면 내적 성장의 의미를 간과하기 쉽다. 재물과 권력을 성공의 잣대로 여기는 사회에서 성장의 가치는 소홀히 취급된다. 그러나 성장이 멈춘 성공은 허물어지기 쉽다. 진정한 성공은 자신을 성장시켜 사회에 기여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성장은 자기 존재적 가치를 키우는 일이다. ‘하버드대 교수들이 들려주는 인생 수업’이라는 부제가 붙은 ‘하버드 인생 특강’에서 앤서니 사이치는 “인간의 성장은 생각과 행동이 모두 성숙해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런 점에서 ‘성장’에는 ‘성숙’이 포함된다.

해마다 나이테를 남기며 나무가 성장하듯 시간이 지난다고 절로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나이로 성숙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자신의 경계에서 벗어나 주변 사람을 생각하고 공동체 문제에 따스한 관심을 갖는데서 성숙은 자리한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는 사유의 지평이자 내면의 깊이가 성숙함의 본질이다. 존중과 감사, 위로와 공감, 배려와 용서는 성숙함을 보여주는 미덕이다. 자신의 존재만큼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성숙함이다. 그런 점에서 성숙함을 지닌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더불어 살 수 있는 공동체가 된다. 자신의 이해관계가 먼저이고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다면 성장과 성숙과 거리가 먼 삶이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으로 시작되는 시가 있다. 시 구절을 따라 음미하다 보면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지난 봄과 여름에 자신이 뿌리고 땀 흘려 가꾼 것들이 어떻게 열매를 맺었는지 거두는 가을이기에, 이 계절은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게 한다. 우리의 뇌가 자신의 죽음을 곱씹지 않도록 프로그램이 되었다 해도, 부인할 수 없는 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마지막 문이 죽음이라는 점이다. 죽음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그러나 삶의 모습은 차이가 있다. 결국 우리 자신의 몫이다. 저물어가는 11월, 가을과 겨울의 접점에서 죽음이 던져주는 묵직한 지혜를 듣는다. 늦가을에 배우는 인생 수업이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